좋은 보육, 조금만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좋은 보육, 조금만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현재 영유아 160여명을 돌보고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의 원장입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오가면서(발령제이기 때문에) 교사 경력을 포함한 교육경력 이십일년째입니다.
오늘도 문득 들어온 아고라에는 어김없이 보육현장에서의 아픈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군요.
체벌을 비롯한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보육교사와 시설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시는 부모님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장시간 근무로 지치는 보육교사들의 하소연들.
모두가 이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매일마다 저도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이니까요....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내 아이를 교사와 시설에 맡기는 부모님들의 심정...
그 아이가 교사에게 맞았다면,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면, 친구에게 맞거나 놀림을 당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나오시겠지요. 가슴인들 안무너지겠습니까.
교실에서 들려오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거기에 대하는 교사의 목소리가 안 들릴 때,
제 가슴도 무너질 듯 하던 걸요. 부모님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들...
07:30~19:30까지 12시간 보육을 해야 합니다. 물론 오전 당직이나 오후 당직 등으로 나누어서 번갈아 근무를 하기는 하지요. 보통 전체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대략 09:00~17:00 정도까지는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어린 영아들은 낮잠을 자지만, 그때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옆에 앉아서 살피면서 관찰일지, 보육일지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교실에서 그러고 있는 교사들이 안타까워 스탠드를 사주기도 했습니다.
당직 근무를 빼고도 대략 7~8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아이들에게 매여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간 외에도 교실청소며, 수업준비, 개별 연락 등등.... 새로운 연구는 꿈이나 꾸겠습니까.
아이들과 밥 먹는 시간... 집에서 겪어 보시면 아시겠지요.
아이들을 두고 화장실을 잘 못가서 신장이 나쁘거나 변비에 걸린 교사들 많습니다.
교실 안에서도 교사가 이쪽으로 고개 돌린 사이에 저쪽에서 사고가 납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을 교사 손 닿는 눈 앞에만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이들....
우리 어린이집에도 10개월부터 취학 직전의 아이들까지 있습니다.
하나같이 예쁘고 귀한 아이들입니다. 맑은 눈이 천사 같은 아이들이지요.
하지만, 아직 어려서(특히나 36개월 이전 아이들은 더더구나)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아서...
양보할 줄도.. 나눌 줄도.. 함께 사용할 줄도, 모릅니다.
내가 가지고 싶으면... 친구 손에 있어도 뺏고, 안되면 밀치고, 때리고, 심지어 꼬집고 깨물기조차 합니다. 그 아이가 나빠서일까요? 복합적인 여러 가지 이유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아실 것입니다.
문제는... 그래서 생긴 뒷감당입니다.
평소에 너무 믿고, 고마워하던 우리 아이 선생님도,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한 번 생기면, 서운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혹시나, 선생님이 현장을 못 보기라도 하셨을 때는 더 하지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참 힘이 듭니다.
정확한 상황부터 알아봐야 하는데, 사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교사가 보지 못했다면, 아이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아직 자기 중심성이 강하고, 정확하게 인지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말을 통해서?
자기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할까 싶은 교사들의 조금은 왜곡되고 둘러대는 변명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살피지 못한 원장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속상하고 아픈 마음도 풀어 드려야 하고.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달래주면서, 실수와 잘못을 짚어 주어야 하고.
그 무엇보다 앞서야 할, 그러면서 뒷수습의 목적이 되어야 할,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
앞으로 어린이집 생활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 과정에서... 솟아 올라오는 저의 감정들을 달래고 누르노라면,
때로는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우리 주임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어린이집 운영 더 못하겠다. 사표 내야할 것 같다고.
주임샘, 눈이 동그래져서 묻더라구요.... 왜 그러세요?
학부모들과 사회에서는 보육서비스를 더 강화하라고 하지,
노동부에서는 종사자들의 근무조건을 완화하라고 하지,
(12시간 보육하라고 하면서, 교사는 8시간 근무 시키라고 합니다. 아동대 교사정원은 학급당 100%인데요. 그나마 원장은 근로자가 아니라 5월1일도 못쉽니다. 휴일근무수당? 당연히 없구요.)
환경부며 방재청등에서는 공기질, 소방시설, 급식위생시설...등 각종 시설 개선을 위해 시설 확충과 비품 등 계속 투자하라고 하지, 운영비는 어떻게 감당하냐고... 그만 둘 수 밖에...
가만히 듣던 주임샘...
원장님, 어디 가셔서 바람 쐬시고 머리 식혀서 오세요... 하더라구요.
웃고 넘어가기에는... 참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입니다.
국가 정책이 문제라구요....
국회의원들은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육료 자율화한다고 합니다.
내년부터는 저소등측 가정에 주는 보육료지원액을 시설로 주지 않고 가정으로 준다고 합니다.
급한 가정 살림에 쓰고 나서 낼 돈이 없으면... 밀리다가, 그냥 그만 둡니다.
보육료 안내고 계속 나오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 보낼까요?
이렇게... 아니, 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어려움들이 있는 우리나라 보육현장입니다.
있으면 안 될, 있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생겼을 때.
우리 모두....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상대의 입장을 돌아보며 이해하고... 그렇게 문제를 풀어 가면 어떨까요.
내일도 어린이집에 가서...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을 만나야 합니다.
어린이날 축제를 준비하느라, 동극이며 공연 연습을 하느라 늦게 퇴근하던 샘들.
음식 준비며, 풍선 공예며, 페이스 페인팅이며... 언제나 기꺼이 도와주시는 어머니들.
우리 서로 이해하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서로 믿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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