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사람들

이 시대 참 부자를 만나다

강물이 흘러 2009. 10. 15. 22:02

 

이 시대 참 부자를 만나다

“임자,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마”

                                                         이코노믹리뷰 | 오희나 | 입력 2009.10.13

 

 

노블레스오블리주 실천하는 기부천사들 릴레이 인터뷰


너무 많이 써도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써야 할 때 안 써도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게 바로 돈이다.

부자든 서민이든 남에게 주는 것이 쉬운 선택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 어떤 이에게 오천 원은 껌 한통을 살 수 있는 크기지만 어떤 이에게 오천 원은 가족이 한 달 동안 살 수 있는 크기가 될 수도 있다.

단순히 기부의 가치를 돈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부는 단순히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혹은 취업의 기회를 나눌 수도 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값진 기부인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류근철 한의학박사
                                       "578억원 기부하고 8평 쪽방서 세계를 보지요"

"지금 기거하고 있는 카이스트 기숙사는 8평 쪽방입니다. 이번에 대전국제우주대회에서 의료봉사를 하게 돼서 카이스트 기숙사에 기거하게 됐지요.
얼마 전 총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지인의 별장에 놀러가게 됐습니다. 그 별장은 백 만평이었는데 제 눈에는 풀잎하고 나뭇잎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제 방에 누우면 비록 8평 쪽방이지만 우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가 보입니다. 장학금과 연구비를 어떻게 지원해야 겠다는 생각, 연구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평생 모은 전 재산 578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류근철 박사. 류 박사가 KAIST에 기부한 재산은 시가 500억원 상당의 서울 서대문 인근 빌딩과 약 400억원 상당의 경북 영양군의 임야 10만975평,
약 14억원인 서울 광화문의 61평 주상복합아파트, 약 24억원 정도의 골동품 100여 점 등 총 578억 원에 달한다. 아내 명의로 돼 있는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하면 전 재산을 기부한 셈이다.

"처음엔 가족들이 우리 아버지는 10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사람이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하니까 반대를 하더군요.
친한 친구는 저보고 미쳤다고 하면서 나중에 자식에게 원망을 듣게 될거란 말도 했습니다. 또 어떤 지인은 손해배상을 물어주면 되니 기부하지 말라고도 했죠."

류 박사는 전 재산을 기부해 사회적인 존경을 받았지만 주변의 반대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박사가 전 재산을 기부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운동 당시 저희 어머니는 27살이셨어요. 아버지는 몽둥이를, 어머니는 돌멩이를 들고 독립운동을 하셨죠.
당시 아버지는 다리에 총을 맞아 평생 불편하게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고문을 당해 정신분열증이 있으셨고요.
하지만 거지가 와서 밥을 달라고 하면 당신이 한끼밥을 굶고서라도 밥을 주셨고,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을 겪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움막집을 지어주고 밥을 갔다주기도 했습니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대신에 그들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일은 류박사의 차지가 되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부모님이 독립운동을 하신 후 한의사였던 할아버지도 일을 못하게 되자 가족의 삶은 비참했다.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가 초등학교에 직접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돈을 안내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그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학을 통해 대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 1끼만 먹고 공부를 했다. 그래도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류 박사.

"일부러 돈이 없어 굶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하려고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시는구나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는 밥을 굶어 위장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마음을 배울수 있었으니까요. 어려운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셋방살이를 전전해 해마다 12월이면 리어커에 짐을 싣고 이사를 가야했던 류박사가 수백억대의 부자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한번 은행에 예금한 돈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통장만도 수십개가 될 정도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은 개인병원을 개업하고 부터다.
그는 경희한방의료원에서 부원장으로 있다가 병원을 개업했는데 매번 위치선정을 잘해서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처음 자산이 100억 원이 넘었을 때는 이제 부자구나란 생각 때문에 기뻤는데 200억을 넘어서니까 이 돈이 내 돈이 아니란 생각에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부할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많아서 오히려 불편했던 점이나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돈이 많이 있을 때는 몸이 자주 아팠어요.
그런데 기부를 하고나니 아픈 데가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근심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이겠죠. 돈이 있을 때는 몸도 아프고 근심걱정이 많았거든요."라고 답했다.

기부를 하니까 너무 기쁘고 돈이 쓰일만한 곳에 쓰이니까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또 "돈은 귀신이 붙어있어 노여움이 잘 탑니다. 돈 때문에 끔찍한 일도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돈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많이 벌어야 합니다. 대신에 값어치 있게 써야 한다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부자는 조물주로부터 어렵게 사는 사람에게 베풀며 살라고 특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주머니를 털어 기부를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물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라가 발전하지는 못합니다.
부자가 주머니를 털어야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죠. 이에 정부나 국회에서는 법을 고쳐서라도 기부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철 스트리트버거 이영철 사장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명문대 출신 멘토됐어요"

 

"돈은 많이 없지만 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해라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저는 돈 많은 부자는 아닙니다라는 말에 어느 지인이 그러시더군요.
대부분의 부자들은 부를 먼저 이루고 기부를 시작하지만 이 사장은 기부를 먼저하고 부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부자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고대의 기부천사 영철스트리트 버거 이영철 사장은 세상에는 돈이 많은 부자도 있지만 사람재산이 많은 부자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자신의 경우는 후자라고 말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1000원짜리 햄버거를 팔아 매년 2천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고려대에는 영철스트리트버거장학금도 생겼다.
이렇게 틈틈이 기부한 돈이 1억 200만원. 200만원은 이 사장처럼 기부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후배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다. 어려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도와준 것을 따지면 이보다 더 큰 액수다.

"내 나이대를 봐도 저처럼 고생한 사람이 드물더라고요.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로울 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고생이거든요. 기부를 하면할수록 외로울 때 저를 보듬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폐결핵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의 어머니는 8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영철 사장은 11살에 서울로 올라와 중국집, 공장,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2000년 고려대학교에 리어커를 끌고와 길거리에서 햄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 어려웠던 사회분위기를 타고 영철버거가 천원짜리 버거로 유명세를 타자 돈도 제법 모았다.

처음 기부를 시작할 당시 그의 수중에 있던 돈은 7천만원, 남들이 보기에는 적은 돈일지 몰라도 그의 인생 처음으로 만져보는 거금이었다.
그는 이 돈으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보다는 2천 만원을 떼어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어린시절 어렵게 살았지만 돈 때문에 악착같이 사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돈을 너무 쉽게 벌려고 합니다. 얼마전 동네 지인을 따라 노래방에 갔는데 그 지인이 갑자기 도우미를 부르더군요. 그래서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도우미가 알고보니 대학생이더라고요.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하루에 3~4시간 자고 18시간씩 일해 온 이영철 사장. 그는 쉽게 돈을 벌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을 살피고 가야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몇 해전 이 사장은 평생을 서서 일하느라 허리디스크에 걸려 수술을 했다. 그래도 그는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사장은 지금도 새벽시장에 가서 야채를 직접 구매한다. 거기에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운도 얻는다고.

"기부를 하면 책임감이 주어집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적이 없고 모두 사랑해주더라라는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결과치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치를 놓고 열심히 앞만 보고 살면 제가 만난 부자들처럼 늘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최근 이영철 사장은 또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장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닌 졸업한 학생이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연봉의 80%를 기부하는 인물로 화제가 된 것이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시니어컨설턴트 고영 씨는 인터뷰마다 인생의 멘토를 이영철 사장이라고 밝히며 그에게 받은 도움 때문에 자신도 남을 돕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고영 씨같은 후배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앞으로 이영철 사장은 지난껏 그가 도와준 학생들과 함께 기부하는 모임을 만들 예정이다.

"부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느꼈던 건 외로움이었습니다. 제게 그러더군요. '이 사장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잖아, 나는 의지할 사람이 없어'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니 힘들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진형혜 법무법인 GL 변호사
                                     "부모님 재산 다 내꺼라는 자식 보면 어떻세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기적같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업무적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을 보다보니까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어른의 의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형혜 변호사는 자신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번에 부자봉사상을 수상했는데 우리사회에서 정기적인 봉사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게 사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라고 겸손하게 덧붙였다.

진 변호사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도 기적인데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후원을 시작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그 가족이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어떤 식의 삶이 행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 변호사는 얼마 전 황혼이혼을 희망하는 몇 백억대 부자의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고.  재산이 너무 많아 측정이 불가능해 회계법인에 재산분할을 맡겨야 할 정도였다. 이혼을 한 뒤 그 부자는 홀가분한 마음에 자식들에게 몇 십억짜리 주상복합아파트를 증여했다.  그런데 자식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이거밖에 안주냐면서 하나더 달라고 했다. 마치 옷 한 벌 더 사달라는 듯이 쉽게 말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우리들건데 라는 시선이 너무 괴씸했다고 털어놓았다. 진 변호사는 부자가 되더라도 그런 부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요새 젊은 사람들은 부모들에게 기대면서 예전과는 다른 시대지 않느냐고 이야기 하지만 부모세대가 어렵게 산 그 시절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몇 십 년 전 이야기다"라면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후원하는 아이들은 10여명이지만 앞으로 500명 정도를 후원할 수 있게 되면 의미 있는 삶이 될 것 같다는 진 변호사.
앞으로는 아이들의 멘토 역할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일을 은퇴하게 되면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이 제대로 일어설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게 사건을 의뢰했던 어느 부자가 '돈은 너무 많이 써도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써야 할 때 안 써도 우습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부자는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빈자는 선택의 폭이 좁지요.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자신의 몫입니다." 

                                      사회적 기업 그린주의 김현미 대표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야 지속경영도 가능하죠"

 

"경기가 어려워 실업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들은 취업이 더 절심함에도 취업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프린터 토너, 잉크, 아토피와 탈모에 좋은 바이오 용품을 생산하는 '그린주의'를 운영하는 김현미 사장.

얼마전 그녀는 부자학연구학회에서 수여하는 부자봉사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봉사부자상을 준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고.
하지만 자신을 추천한 추천위원이 "기업의 자산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있지만 사회복지에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린주의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라는 말에 상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제조파트에 지적장애인을, 영업파트에 노인들을 고용하고 있다. 자동화기기를 설치해 단순노동이기 때문에 지적장애인들도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도 받았다.
김 사장은 장애인과 노인들이 근무하면 질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선입견 때문에 R & D에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서울대와 중부대와 산학연을 맺기도 했다.

김 사장은 처음부터 좋은 의도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외국계금융사에 다니다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공장 부지를 알아보다가 담안선교회를 알게 됐다.
그곳에 공장터가 있었는데 그 부지를 이용하는 조건이 출소자를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소자 3명을 고용하게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김 사장은 그들이 회사에서 대우를 잘해주면 누구보다 더 잘 해낼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은 이직율이 높은데 이들은 오히려 충성도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출소자들이 가정도 꾸리고 안정을 찾아 지금껏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는 복지관과 연계해 3명의 장애인을 추천받아 인턴으로 고용했다.
"한 달 동안만 일하게 하려고 했는데 비장애인보다 오히려 성실하고 영혼이 맑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들이 복지관의 프로그램으로 잠깐 일하는 게 아닌 고용보험도 내고 세금도 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식직원으로 채용했고요. 이후 장애인직원들을 조금씩 늘려 현재는 50%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회사에 비장애인이 면접을 오면 처음부터 연봉이 얼마인지부터 주판알을 튕기는 것은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외부로 자원봉사도 하러 가는데 내 주변에서 장애인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가는 게 더 값진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녀는 또 "바닥에서 시작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하니 힘은 들지만 그게 뿌리가 되더군요.
만일 내가 부모 잘 만나서 기업을 그냥 물려받았다면 그들을 소모품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죠."라고 덧붙였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른 방법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은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오너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경쟁에서 누군가를 짓밟기보다는 빌게이츠처럼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들도 기부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인위적이라고 강압적이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거든요.

진정한 부자는 돈도 많아야 하겠지만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세와 불법으로 부자가 되더라도 욕을 먹게 되죠. 저는 선한 부자가 됐을 때 진정한 부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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