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그에겐 너무 초라한 대종상 - 들까마귀님 -
김명민, 그에겐 너무 초라한 대종상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대종상은 대종상이더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끄덕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다시 갸웃거리게 하는 대종상 수상의 어리둥절한 결과들은 후보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적절한 나눠주기도, 나름의 기준을 가진 확고한 평가의 결과도 아닌 그냥 괴상하게 꼬여있는 대종상 그 자체였습니다.
대중적인 인기가 우선하는 것도,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특유의 보수적인 색체가 드러나는 것도, 그렇다고 올드보이들을 우대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함이 망쳐놓은 결과물들이에요. 후보작들의 면면은 제법 그럴듯하고 타당해 보이지만, 그 주인공의 얼굴은 너무나 의외의, 차라리 조금은 당혹스러운 것들로 채워져 있기 일쑤였으니까요. 아마 브아걸 미료의 계단 굴욕이 없었으면 별 재미도 화제도 없었을 밋밋함의 잔치였습니다.
뭐, 본래 그 순위를 정할 수 없는 것들이 종합된 결과물을 굳이 1등을 가려 평가하는 영화제 시상이라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수상 명단을 만들고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이들과 작품을 응원하며 지켜보기 마련이죠. 그 결과 역시도 기호에 따라, 영화제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구요.
올해 수상한 분들이 아예 자격이 없는 엉터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물들을 대중들에게 선보였고, 박수 받아 마땅한 작품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들의 노력을 아무런 공통점도 없이 그냥 갈지자 행보로 엮어놓은 결과를 보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역시 대종상이네 하는 것 외엔 딱히 할 말이 없어요.
만약 신기전에게 작품상을 안겨 주었던 것처럼, 남우주연상의 이름에 다른 이들이 불려 졌다면 전 조금 더 실망했을 겁니다. 물론 그 실망은 신기전에서 대 폭발하기는 했지만 말이죠. 네. 김명민은 대리 수상자의 말처럼 받을만한 연기, 받을만한 배우였습니다. 다른 후보자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영화제의 잔혹한 선정 방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단 한 사람을 뽑으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김명민의 이름을 지목할거에요.
그만큼, 그는 지독하고 치열하고 무섭게 자신의 영화에 몰입했었고, 언제나처럼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그 열정과 집념에 대한 보상으로 대종상은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에요.
사실, 전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늘 삐뚤어지고 상처입고 조각이 나있는 인물로 나타나니까요.
그것이 '내 사랑 내 곁에'의 루게릭 환자처럼 육체적인 아픔이든 장준혁이나 강마애같은 정신적인 굴곡이건 간에 배우 김명민은 온전한 이웃, 평범한 사람으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너무나 자세하고 철저하게 보여주면서 보는 이를 당혹시키고 민망하게 합니다. 아픔, 상처가 눈앞에서 해부되는 듯 한 격렬함, 그 껄끄러움을 일으키는 정면 승부는 김명민의 연기를 편하게 접하지 못하게 해요. 그는 자신이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보는 이들 역시도 그 아픔과 상처를 분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긴장감이 도통 저는 익숙해지지가 않더라구요.
하지만, 그것이 단지 지독한 것이라면 그냥 외면해버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는 지독하고 때로는 너무나 잔혹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고 정직하며 절실합니다. 진심을 다해서 그 역할 속으로 몰입되어 호소하는 그의 울림은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그의 열정에 감탄하고 그를 통해 전달되는 극 속의 인물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작품을 보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배우라는 직업이 수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결과물들을 김명민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달받을 뿐입니다. 그것이 비록 상처투성이의 아프고 왜곡된 이의 인생이라 해도, 김명민이 보여주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이의 삶이 되어 버리니까요.
저는 송강호에게서 연기란 능글맞은 것임을 발견하고, 설경구에게선 같아 보이지만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소화력에 감탄하고, 최민식에게 비굴하지만 저열하지 않은 꼿꼿함에 위안을 얻습니다.
하지만, 김명민에게서는 그저 진실, 연기에 대한 경건하기까지한 진실함만이 보일 뿐이에요. 따로 꾸미지 않고, 과하게 장식하지 않는 진실함. 그의 연기에서 상처와 아픔에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겐 이리저리 삐뚤어진 상처투성이의 삶들이 너무나도 많이 널려져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명민은 저에게 그런 배우입니다.
그래서 그는 껄끄럽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보기에 괴로워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연기자에요. 그것이 어떤 상이 되었든, 받는 이의 불참과 대리 수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대종상 남우주연상 대리수상이 왠지 다행이다 싶었던 이유는 아마 대종상과 김명민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런 불협화음 때문이었을거에요.
상이야 받을 수록 좋다지만, 받는 이는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이리저리 정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대종상은 너무 곧아서 부러질 것만 같은 그에게는 영 어울려 보이지 않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