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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엄마의 서로 다른 자식 사랑 - KBS <솔약국집 아들들>

강물이 흘러 2009. 11. 26. 15:49

세 엄마의 서로 다른 자식 사랑 - KBS <솔약국집..

2009-06-02 10:10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엄마가 있다. 아들 가진 엄마와 아들 못 가진 엄마. 거기에 굳이 하나를 더 붙이자면 아이 못 낳은 엄마 정도?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들 가진 엄마들의 유세는 오랜 관습처럼 남아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잠을 좀 자려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전화소리가 살짝 거슬렸다. 약 1분간의 짧은 통화에서 ‘아들아’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는지 모른다. “아들아, 일어났니?” “아들아, 밥 차려놨으니까 먹고 가라.” “아들아, 오늘 몇 시에 오니?” 등등. 혹시 그 집 아들 이름이 ‘아들’인가?



아들 가진 엄마의 뱃심
  그렇게 잘난 아들을 넷씩이나 낳아 기르는 엄마는 마냥 위풍당당 행복할까? KBS 주말 연속극 <솔약국집 아들들>에 등장하는 배옥희 여사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그녀는 나이 40인 아들이 있는데도 아버님 시집살이에 절절맨다. 네 아들 모두 신체 건강하고 멀쩡한 직장(재수생인 미풍이를 빼고)에 다니면서도 결혼 못 시킨 게 죄라면 죄. 며느리 거느리고 시집살이시키며 호강할 나이에 장가 못 간 네 아들 건사하며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장성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해대고 능글맞은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말솜씨도 좋다.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를 살살 꼬드기는 재주도 있고 실패를 거듭하지만 큰아들 맞선자리 알아보는 데 도가 텄다. 그녀의 그런 뱃심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라도 며느리가 한 명 필요하지 않을까? 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유세도 부리는 것 아닌가.
 

그 외 기타 등등의 엄마들
   아들 가진 엄마를 제외한 기타 등등의 한국 엄마들을 한번 보자. 대학 다닐 때 퀸이었고 남편이 아무리 공주처럼 떠받든다고 해도 아이 못 낳은 여자는 죄인이다. 딸만 다섯을 낳은 우리 엄마는 지금이야 떵떵거리고 살지만 오랫동안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금도 결혼시킬 때마다 딸 가진 부모의 설움을 느낀다는 울 엄마도 있는데 딸도 하나 못 낳은 여자가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었을까. <솔약국집 아들들>에 등장하는 오영달의 아내가 바로 그런 여자다. 그런 그녀에게 굴러들어온 오은지는 하늘이 내린 은총이다. 그러니 딸이 딸이 아니고 자식이 자식이 아닌, 상전인 것이다. 은지를 대하는 안 여사의 자세는 솔약국집 배 여사와는 딴 판일 수밖에 없다.

   한편 최근 또 다른 엄마가 등장해 관습에서 벗어난 기타 등등의 새로운 엄마상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은지의 친엄마다. 자식을 버린 엄마로 딸에게서 외면당하는 죄인이지만 자신의 일에서 자신감을 얻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엄마의 권리를 주장한다. 다소 뻔뻔해 보이는 그녀도 엄마인지라 딸과 떨어져 있던 오랜 세월동안 자식에 대한 관심을 버린 적은 없다. 20년 만에 만난 딸에게 냉정하게 충고하면서도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 또한 엄마다. 그러나 아들을 가진 특권으로 배짱 두둑한 엄마도 아니요, 자식 앞에서마저 죄인이 되는 나약한 엄마도 아닌 제3의 엄마인 것이다.
 

   애초에 서양에서 발전한 심리학이 한국 전통문화와 부딪치면서 혼란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상담학은 ‘현실 적응’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 한국적인 상담을 개발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50대 주부의 심정을 공감하는 차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들 가진 엄마가 기가 센 것을 오만한 내담자로 치부할 수 없고 딸 가진 위축된 엄마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진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솔약국집 아들들>의 오은지 친엄마처럼 관습을 홀딱 깨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들 넷 키우면서도 속이 타들어가는 배 여사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조금 통쾌하기도 하다. 주말마다 그녀를 지켜보는 기타 등등의 엄마들의 심정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