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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월 100만원, 그럼 오노는?
강물이 흘러
2010. 3. 5. 00:44
김연아는 월 100만원, 그럼 오노는?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2010.03.04
이번 밴쿠버 겨울(동계) 올림픽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행복했다. 우리 선수들이 대단한 성적을 올렸을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쓴 김연아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메달은 하나도 따지 못했지만 무려 5차례나 올림픽에 참가해 우리나라 사상 최다 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운 이규혁 선수나, 13위를 하고도 활짝 웃는 곽민정 선수도 감동적이었다. 모두 올림픽 정신을 실천한 진정한 스포츠맨이다.
그러나 역대 최대 성적이라는 금메달의 광채와 화려한 환호 속에 드러난 아쉬움도 있다. 금메달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는 우리 선수들의 얼굴이나,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메달리스트가 아니라고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곽민정의 모습은 올림픽의 상업화와 경쟁화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다.
우리는 그동안 압축경제성장만큼이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금메달 숫자에 따른 순위 경쟁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특히 올림픽에서의 순위가 마치 국력을 나타내는 기준이라도 되는 듯 오로지 금메달만을 외치면서 달려왔다. 금메달이 곧 애국이니, 메달 수상자에 대해 금전적 포상이나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대한체육회와 연맹 차원의 포상에 이어 정부 차원의 포상이 잇따르고, 마침내 세계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육연금(정식 명칭은 '경기력향상연구연금'으로 88올림픽 다음인 1989년부터 시작됐다)이라는 평생보상 제도까지 만들어 냈다. 나는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금전적 포상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떤 포상이나 보상도 올림픽의 본질적인 정신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메달은 올림픽의 참 모습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이른바 체육연금은 이제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한 번의 순위에 따라 평생의 연금 차이를 가져오는 체육연금은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숭배와 순위에 따른 지나친 경쟁주의의 바탕에는 메달 색깔에 의한 평생 차등지급인 체육연금이 있다.
솔직히 올림픽 금메달 하면, 선수나 국민들 모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명예' 못지않게 체육연금, 평생연금 아닌가. 언론들도 금메달 다음에는 포상금이 얼마니, 평생 받는 체육연금이 얼마니 하면서 금메달을 돈으로 환산하는 기사를 싣는 등 호들갑을 떤다.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메달 색깔과 연금액수가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올림픽이 상업화와 경쟁화, 국가주의화로 인해 본래 의의가 퇴색됐다고 하더라도, 올림픽 정신이 '참가'라는 본질적 가치는 변할 수 없다.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은 올림픽 강령을 통해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고 했다. 올림픽의 정신과 이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이다.
'참가하는 데 뜻이 있다'는 올림픽 정신은 낡은 서재의 케케묵은 책속에 있는 잊힌 구호가 아니다. 아무리 금메달에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포상금과 연금으로 돈다발이 쌓여도, 메달은 올림픽의 참 모습이 될 수 없다. 태양처럼 언제나 살아 활활 타오르는 올림픽 정신, 올림픽의 참 모습은 여전히 '참가'고 '명예'다.
메달 색깔에 따른 체육연금은 올림픽 정신에 대한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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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대 최대 성적이라는 금메달의 광채와 화려한 환호 속에 드러난 아쉬움도 있다. 금메달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는 우리 선수들의 얼굴이나,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메달리스트가 아니라고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곽민정의 모습은 올림픽의 상업화와 경쟁화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다.
우리는 그동안 압축경제성장만큼이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금메달 숫자에 따른 순위 경쟁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특히 올림픽에서의 순위가 마치 국력을 나타내는 기준이라도 되는 듯 오로지 금메달만을 외치면서 달려왔다. 금메달이 곧 애국이니, 메달 수상자에 대해 금전적 포상이나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대한체육회와 연맹 차원의 포상에 이어 정부 차원의 포상이 잇따르고, 마침내 세계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육연금(정식 명칭은 '경기력향상연구연금'으로 88올림픽 다음인 1989년부터 시작됐다)이라는 평생보상 제도까지 만들어 냈다. 나는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금전적 포상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떤 포상이나 보상도 올림픽의 본질적인 정신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메달은 올림픽의 참 모습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이른바 체육연금은 이제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한 번의 순위에 따라 평생의 연금 차이를 가져오는 체육연금은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숭배와 순위에 따른 지나친 경쟁주의의 바탕에는 메달 색깔에 의한 평생 차등지급인 체육연금이 있다.
솔직히 올림픽 금메달 하면, 선수나 국민들 모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명예' 못지않게 체육연금, 평생연금 아닌가. 언론들도 금메달 다음에는 포상금이 얼마니, 평생 받는 체육연금이 얼마니 하면서 금메달을 돈으로 환산하는 기사를 싣는 등 호들갑을 떤다.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메달 색깔과 연금액수가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올림픽이 상업화와 경쟁화, 국가주의화로 인해 본래 의의가 퇴색됐다고 하더라도, 올림픽 정신이 '참가'라는 본질적 가치는 변할 수 없다.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은 올림픽 강령을 통해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고 했다. 올림픽의 정신과 이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이다.
'참가하는 데 뜻이 있다'는 올림픽 정신은 낡은 서재의 케케묵은 책속에 있는 잊힌 구호가 아니다. 아무리 금메달에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포상금과 연금으로 돈다발이 쌓여도, 메달은 올림픽의 참 모습이 될 수 없다. 태양처럼 언제나 살아 활활 타오르는 올림픽 정신, 올림픽의 참 모습은 여전히 '참가'고 '명예'다.
메달 색깔에 따른 체육연금은 올림픽 정신에 대한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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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이번 겨울 올림픽의 또 다른 영웅은 당연히 이규혁 선수가 차지해야 한다. 한국 선수로는 가장 많은 5차례나 올림픽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봅슬레이의 강광배 선수는 모두 4차례나 겨울 올림픽에 참가했다. 여름 올림픽에서는 여자핸드볼의 오성옥 선수가 5번 출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참가'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많이 실천한 이규혁과 강광배는 올림픽 성적으로만 보면, 한 푼의 체육연금도 받을 수 없다. 체육연금 혜택의 기준은 올림픽 정신이 아니라 철저히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라 매겨진 점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 월 100만 원, 은메달 월 45만 원, 동메달 월 30만 원'의 체육연금 액수는 올림픽 메달에 따른 금전화와 차별화를 보여준다.
메달 색깔에 따라 평생 받는 연금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선수로서는 명예도 좋지만 금메달이 아니면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마치 국가에 대한 유공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 국가유공자 등급 판정과 같이 올림픽 메달에 따라 연금 등급을 매기는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 체육연금 지급액은 처음으로 그 대상이 1000명을 넘고 액수도 1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 정신의 문제다.
체육연금을 지급하는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홈페이지를 보라. < 기금지원사업 > 란의 '경기력향상연구연금'이라는 이름의 체육연금 지급 기준은 놀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서열화 되어 있다. 국제경기대회를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 그리고 아시아경기대회 등으로 서열을 나눈 뒤, 금·은·동 메달 색깔에 따른 차등적인 가중치 점수를 주고, 합산점수가 20점을 넘은 경우에 한 해 매월 3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연금을 차별 지급하는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국가가 앞장서서 국제경기대회를 이처럼 서열화하고,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라 점수화하고, 그 점수를 바로 연금 즉 돈으로 환산하고 있다. 스포츠의 상업화와 국제경기대회의 서열화, 메달 색깔에 따른 점수화와 금전화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 어떻게 더 아마추어 스포츠에 기반을 둔 올림픽 정신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스포츠강국이나 국민행복은 금메달 순이 아니다
올림픽 정신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참가하는 데 있으며, 메달은 명예일 뿐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국가차원에서 포상금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단체 차원에서 일부 포상금을 주더라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과도한 금액은 주지 않는다. 더욱이, 국가가 나서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평생 연금을 주는 나라는 대한민국 이외에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 때 처음으로 금메달 수상자에게 최고 2만 달러(약 2천만 원)를 제공한 캐나다 올림픽위원회는 그 이유로 "올림픽 출전을 위한 훈련과정에서 직면했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스웨덴은 금메달 수상자에게 1만 크로네(약 160만 원)를 주기로 했는데, 이것도 국가 차원이 아니라 바이애슬론협회 차원의 지급이다.
캐나다와 스웨덴이 한국보다 못 살아서 포상금을 적게 주거나, 다른 선진국들이 돈이 없어서 포상금이나 연금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포상금과 연금을 주면 금메달을 더 많이 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배려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쓴 < 네덜란드 > 라는 책에는 지난 88서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 선수에 대해 "동네사람들이 축하한다며 돈을 내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번 사준 것이 그 선수가 받은 보상의 전부였다"고 한다.
네덜란드나 북유럽 국가 등 보편적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의 스포츠 선수와 우리의 경우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올림픽 정신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분명히 엿볼 수 있다. 주 교수의 설명은 네덜란드 국민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스포츠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국민 다수가 건강을 위해 직접 운동을 하고, 경기관람을 축제처럼 즐기는 나라가 진정한 스포츠강국이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많이 땄다고 스포츠강국이 아니다. 우리 언론들은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 순위 5위로 '동계 스포츠강국'이 되었다고 떠들썩하지만, 우리가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보다 금메달이 많다고 스포츠강국이라고 하며 정말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금메달에 의한 '스포츠강국'이라고, 국민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옛 동구권 공산국가들은 국가주도의 체육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지만, 국민들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부탄과 네팔은 올림픽에서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하지만, 국민행복 지수는 세계 1, 2위다.
올림픽은 개인간 경쟁이지, 국가간 경쟁이 아니다
그러나 '참가'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많이 실천한 이규혁과 강광배는 올림픽 성적으로만 보면, 한 푼의 체육연금도 받을 수 없다. 체육연금 혜택의 기준은 올림픽 정신이 아니라 철저히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라 매겨진 점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 월 100만 원, 은메달 월 45만 원, 동메달 월 30만 원'의 체육연금 액수는 올림픽 메달에 따른 금전화와 차별화를 보여준다.
메달 색깔에 따라 평생 받는 연금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선수로서는 명예도 좋지만 금메달이 아니면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마치 국가에 대한 유공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 국가유공자 등급 판정과 같이 올림픽 메달에 따라 연금 등급을 매기는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 체육연금 지급액은 처음으로 그 대상이 1000명을 넘고 액수도 100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 정신의 문제다.
체육연금을 지급하는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홈페이지를 보라. < 기금지원사업 > 란의 '경기력향상연구연금'이라는 이름의 체육연금 지급 기준은 놀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서열화 되어 있다. 국제경기대회를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 그리고 아시아경기대회 등으로 서열을 나눈 뒤, 금·은·동 메달 색깔에 따른 차등적인 가중치 점수를 주고, 합산점수가 20점을 넘은 경우에 한 해 매월 3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연금을 차별 지급하는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국가가 앞장서서 국제경기대회를 이처럼 서열화하고,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라 점수화하고, 그 점수를 바로 연금 즉 돈으로 환산하고 있다. 스포츠의 상업화와 국제경기대회의 서열화, 메달 색깔에 따른 점수화와 금전화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 어떻게 더 아마추어 스포츠에 기반을 둔 올림픽 정신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스포츠강국이나 국민행복은 금메달 순이 아니다
올림픽 정신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참가하는 데 있으며, 메달은 명예일 뿐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국가차원에서 포상금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단체 차원에서 일부 포상금을 주더라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과도한 금액은 주지 않는다. 더욱이, 국가가 나서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고 평생 연금을 주는 나라는 대한민국 이외에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여름 올림픽 때 처음으로 금메달 수상자에게 최고 2만 달러(약 2천만 원)를 제공한 캐나다 올림픽위원회는 그 이유로 "올림픽 출전을 위한 훈련과정에서 직면했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스웨덴은 금메달 수상자에게 1만 크로네(약 160만 원)를 주기로 했는데, 이것도 국가 차원이 아니라 바이애슬론협회 차원의 지급이다.
캐나다와 스웨덴이 한국보다 못 살아서 포상금을 적게 주거나, 다른 선진국들이 돈이 없어서 포상금이나 연금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포상금과 연금을 주면 금메달을 더 많이 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배려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쓴 < 네덜란드 > 라는 책에는 지난 88서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 선수에 대해 "동네사람들이 축하한다며 돈을 내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번 사준 것이 그 선수가 받은 보상의 전부였다"고 한다.
네덜란드나 북유럽 국가 등 보편적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의 스포츠 선수와 우리의 경우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올림픽 정신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분명히 엿볼 수 있다. 주 교수의 설명은 네덜란드 국민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스포츠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국민 다수가 건강을 위해 직접 운동을 하고, 경기관람을 축제처럼 즐기는 나라가 진정한 스포츠강국이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많이 땄다고 스포츠강국이 아니다. 우리 언론들은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 순위 5위로 '동계 스포츠강국'이 되었다고 떠들썩하지만, 우리가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보다 금메달이 많다고 스포츠강국이라고 하며 정말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금메달에 의한 '스포츠강국'이라고, 국민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옛 동구권 공산국가들은 국가주도의 체육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지만, 국민들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부탄과 네팔은 올림픽에서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하지만, 국민행복 지수는 세계 1, 2위다.
올림픽은 개인간 경쟁이지, 국가간 경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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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우며 13위에 올라 '제2의 김연아' '피겨요정'으로 불리는 곽민정(16·수리고) 선수가 2일 오후 인천공항 미디어실에서 열린 선수단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메달을 따지 못한 곽 선수는 의자에 앉지 못한 채 1시간가량 서 있어야 했다. |
올림픽 메달을 금전적으로 보상하려는 발상은 올림픽 성적이 국력의 척도로 여겨지면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진 후유증이다. 올림픽은 히틀러 시대에는 인종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냉전시대에는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우리 경우에는 남북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일본의 옛 식민지 경험 등이 겹치면서 올림픽에서의 국가주의와 국수주의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올림픽을 통해 체제 우월성 경쟁과 민족적 배타성이 나타났다.
금메달 숭배주의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지 못하면, 그것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것으로 여긴다. 올림픽에는 국가별 성적이나, 메달 획득 여부에 따른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나라별로 금메달 숫자를 매기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국가별 순위가 존재할 수가 없다. 올림픽 헌장 6조에는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간의 경쟁이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각 나라의 언론들이 자체적 기준으로 모든 메달의 총합계, 또는 금메달 숫자 우선으로 순위를 매길 뿐이다. 어찌 보면 올림픽 순위는 올림픽 정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허망한 수치에 불과하다. 올림픽 메달이 갖는 개인의 성취와 국위선양, 명예의 상징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은 결코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없다.
메달의 색깔에 따라 포상금과 연금의 액수가 달라지는 상업화된 올림픽의 슬픈 모습이 어른거리지만, 올림픽 정신은 누가 뭐래도 참가다. 카메라가 금메달 선수에게만 비친다고, 올림픽 정신이 메달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꼴찌가 웃는 스포츠, 그것이 바로 올림픽이고 올림픽은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메달이나 순위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은 설령 꼴찌를 했더라도, 시건방진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다. 올림픽에 출전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아쉬울 것이 뭐가 있는가.
체육연금의 폐지, 참여와 즐김의 새로운 올림픽 문화의 시작
금메달 숫자로 스포츠강국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가가 지나친 포상이나 체육연금으로 앞장서서 올림픽 메달을 금전화하지 마라. 올림픽을 돈으로 계산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물신화다. 선수들에게는 연금 대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선수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포상이나 명예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포상의 경우도 대한체육회나 각 경기연맹,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은 모르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다. 포상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메달 여부뿐 아니라, 올림픽 출전 횟수도 포상기준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그것이 '참가'라는 올림픽 정신에 그나마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5번 이상 올림픽 참가 선수에게는 금메달에 준하는 포상을 하고, 4번은 은메달, 3번은 동메달에 준하는 포상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1988년 여름(동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를 개최했고, 금메달 기준으로 여름 올림픽에서는 4위를, 그리고 이번 겨울 올림픽에서 5위를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다. 국제경기대회에서 금메달 경쟁이나 순위 경쟁은 이미 할 만큼 했고, 이룰 만큼 이뤘다.
모든 세상이 상업화와 경쟁, 시장논리와 신자유주의로 도배되더라도, 올림픽만큼은 그래도 아마추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남겨두자. 선수는 메달이나 순위가 아니라 경기 그 자체를 즐기고, 국민들은 축제처럼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가 필요하다. 기록과 경쟁보다 참여와 즐김을 찾는 스포츠 문화다.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시작은 오로지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른 점수화로 올림픽 정신을 모독하는 체육연금의 폐지다. 올림픽을 금메달만 기억하도록 하고, 선수들에게서 웃음을 앗아가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 오마이 블로그]
우리 경우에는 남북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일본의 옛 식민지 경험 등이 겹치면서 올림픽에서의 국가주의와 국수주의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올림픽을 통해 체제 우월성 경쟁과 민족적 배타성이 나타났다.
금메달 숭배주의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지 못하면, 그것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것으로 여긴다. 올림픽에는 국가별 성적이나, 메달 획득 여부에 따른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나라별로 금메달 숫자를 매기지 않는다.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국가별 순위가 존재할 수가 없다. 올림픽 헌장 6조에는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간의 경쟁이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각 나라의 언론들이 자체적 기준으로 모든 메달의 총합계, 또는 금메달 숫자 우선으로 순위를 매길 뿐이다. 어찌 보면 올림픽 순위는 올림픽 정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허망한 수치에 불과하다. 올림픽 메달이 갖는 개인의 성취와 국위선양, 명예의 상징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은 결코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없다.
메달의 색깔에 따라 포상금과 연금의 액수가 달라지는 상업화된 올림픽의 슬픈 모습이 어른거리지만, 올림픽 정신은 누가 뭐래도 참가다. 카메라가 금메달 선수에게만 비친다고, 올림픽 정신이 메달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꼴찌가 웃는 스포츠, 그것이 바로 올림픽이고 올림픽은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메달이나 순위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은 설령 꼴찌를 했더라도, 시건방진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다. 올림픽에 출전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아쉬울 것이 뭐가 있는가.
체육연금의 폐지, 참여와 즐김의 새로운 올림픽 문화의 시작
금메달 숫자로 스포츠강국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가가 지나친 포상이나 체육연금으로 앞장서서 올림픽 메달을 금전화하지 마라. 올림픽을 돈으로 계산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물신화다. 선수들에게는 연금 대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선수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다른 방식의 포상이나 명예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포상의 경우도 대한체육회나 각 경기연맹,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은 모르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다. 포상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메달 여부뿐 아니라, 올림픽 출전 횟수도 포상기준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그것이 '참가'라는 올림픽 정신에 그나마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5번 이상 올림픽 참가 선수에게는 금메달에 준하는 포상을 하고, 4번은 은메달, 3번은 동메달에 준하는 포상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1988년 여름(동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축구를 개최했고, 금메달 기준으로 여름 올림픽에서는 4위를, 그리고 이번 겨울 올림픽에서 5위를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다. 국제경기대회에서 금메달 경쟁이나 순위 경쟁은 이미 할 만큼 했고, 이룰 만큼 이뤘다.
모든 세상이 상업화와 경쟁, 시장논리와 신자유주의로 도배되더라도, 올림픽만큼은 그래도 아마추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남겨두자. 선수는 메달이나 순위가 아니라 경기 그 자체를 즐기고, 국민들은 축제처럼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가 필요하다. 기록과 경쟁보다 참여와 즐김을 찾는 스포츠 문화다.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시작은 오로지 메달 색깔과 순위에 따른 점수화로 올림픽 정신을 모독하는 체육연금의 폐지다. 올림픽을 금메달만 기억하도록 하고, 선수들에게서 웃음을 앗아가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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