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OSEN | 입력 2010.05.26
최근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교회언론회는 "동성애 미화,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논평을 통해 '동성애를 미화하는 TV프로그램의 방영은 동성애에 대한 동정심을 넘어 심각하게 비호하는 측면이 있다."는 논평을 냈다. 또 기도운동단체인 에스더 기도운동도 최근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대로 TV드라마를 방치한다면 이 땅의 많은 청소년에게 동성애는 아름다운 것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시청거부운동을 촉구했다고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성애자 태섭(송창의)에 대한 시선은 극에서 극으로 옮겨졌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동성애자 태섭이란 존재에 대한 반감은 어느새 동감으로 바뀌어버렸다.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걸까.
그것은 커밍아웃을 통해서 비로소 태섭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태섭이 차마 가족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철저히 타자였다. 드라마 속에서 가족과 섞이지 않는 태섭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이 땅의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 그대로였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외계인 같은 존재. 하지만 그가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양엄마인 민재(김해숙)에게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태섭을, 민재는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사실을 민재에게 전해들은 병태(김영철) 역시 태섭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준다.
외계인처럼 겉돌던 태섭은 그 부모인 민재와 병태가 끌어안음으로써 비로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이 시점의 변화가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을 극에서 극으로 바꿔놓은 김수현 작가의 마법. 그 마법은 다름 아닌 가족애다. 타인으로만 바라보던 시청자들의 시점을 가족의 시점으로 바꿔놓자, 거기에 외계인이 아닌 우리네 가족 중 하나로서의 태섭이 서 있었다. 그 어떤 가족이 자신의 가족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그저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민재가 태섭에게 '우리가 너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김수현 식으로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것은 철저히 가족드라마의 시선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분명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인 잣대나 사회적인 맥락 같은 것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가족 바깥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즉 가족의 눈높이에서 동성애는 윤리적인 문제도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저 부모 자식사이에, 형제 남매 사이에 놓여진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드라마라기보다는 김수현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맞다. 다만 그 가족의 일원 중에 동성애자가 들어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양병태네 집안사람들이 저마다 문제들을 갖고 옥신각신하면서도 결국에는 가족애로 그것을 넘어서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드라마다.
거기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동성애에 대한 미화'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자라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그 가족애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해묵은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접근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인간적인 접근방식인지도 모른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김수현작가 “동성애자, 내 자식일 수 있다는 관점서 접근”
경향신문 | 임영주 기자 | 2010.05.30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작가 인터뷰
- 동성애를 다뤄 작품 시작부터 화제가 됐지만, 최근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방송되면서 논쟁이 이는 등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동성애를 가족 안에서 감싸주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고 감동을 받아 울었다는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남의 얘기를 보고 눈물이 나오는 것은요, 그 순간에는 모두 착한 거예요. 내가 착해져야만 남의 얘기에 같이 울게 돼요. 안 착하면 절대로 울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울었다면 그 순간에는 착했던 거예요. (드라마를 보고 동성애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 동성애 묘사 때문에 항의를 받지는 않으셨는지요.
"나한테 직접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나이도 많이 먹었고, 이 작업을 시작한 지 한두 해 된 사람도 아니고 수십년을 했으니까.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몇 개 받았어요. 방송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 앞으로 동성애 문제를 더 다루나요.
"동성애는 정리되는 쪽으로 가겠죠. 더 물고 늘어질 것 없잖아요. 그러면 산뜻하지가 않아요."
- 수십년 동안 슬럼프 없이 인기있고 사회적 영향력 있는 드라마를 쓰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긴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죠. 이 작업은 기술이 아니에요. 내가 심하게 오래하긴 하죠(웃음). 이 작품 다음에 하기로 한 작품도 있어요. 매주 일정한 작업량을 해야 하니까 당장은 이거 하나 해내기도 바쁘지만…."
< 임영주 기자 minerva@kyunghyang.com >
40년 드라마 지배 ‘김수현 파워’ 어디서 나오나
경향신문 | 임영주 기자 | 입력 2010.05.30
올해 나이 만 67세. 드라마 대본 집필 경력 40여년. 집필 TV 드라마 총 60여편(작가 홈페이지 기준). 최근 20여년간 주요 작품 평균 시청률 20%대.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 인생은 아름다워 > 송창의(왼쪽)와 이상우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출연한다.한국 드라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파워 작가 김수현의 이력이다. 그는 현재 SBS에서 주말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 인생은 아름다워 > 에서 민감한 동성애 문제를 다루면서 다시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한국교회언론회 등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를 비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인터넷상에서도 지상파 드라마가 동성애를 다루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반면 "사회적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성애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는 등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시청률도 상승했다.
"김수현이 아니면 누가 이런 화두를 던지겠냐"라는 시청자 의견은 김수현의 위치를 보여준다. 일가를 이룬 드라마 작가들도 전성기 10여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대부분인 이 세계에서 40여년 동안 인기있고 사회적 영향력까지 있는 드라마를 꾸준히 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번 동성애 이슈의 경우 민감한 주제임에도 시청자의 공감대를 많이 이끌어냈다. 동성애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별다른 의견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동성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혔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생각을 하게 한다. 대단한 작가다" "내 가족이 이렇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 등이 그렇다.
이 같은 반응이 나온 것은 가족드라마라는 구조 안에서 이 소재가 다뤄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은 "사회적 문제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자식의 문제로 동성애를 다루기 때문에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동성애자인 가족도 사랑한다는 얘기에 감동이 있는 것이지 동성애가 아름답다는 것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보통 민감한 소재의 심각한 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 등 가볍게 접근하는 방식을 많이 택하지만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는 '센' 주제도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40여년 동안 큰 기복 없이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낸 데 대해서는 작가의 뛰어난 실력을 간과할 수 없다. 김수현 작품에는 가족드라마가 많긴 하지만, < 사랑이 뭐길래 > 와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 불꽃 > < 내 남자의 여자 > 등 진한 멜로까지 대부분의 장르에서 히트작이 나왔다.
박종 SBS 드라마센터장은 "보통 두 가지 드라마 장르만 섭렵해도 대가라고 하는데, 김수현 작가는 거의 모든 장르를 완전히 소화한다"고 말했다. 또 "시청률이 좀 낮은 작품은 있었어도 말이 안되거나 억지스러운 드라마는 없었다"며 "일정 수준과 격을 유지하면서 모든 장르를 소화해냈기 때문에 그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변화에 민감한 작가적 감수성도 한몫 한다. 박 센터장은 "지금 연세에도 트위터 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며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를 이해하는 폭이 넓다"고 말했다.
미혼모, 불륜, 달라진 고부관계와 주부의 사회적 위치 등의 사회상을 앞서 드라마에 반영하며 사회에 충격을 줬던 김 작가의 세상을 읽는 눈은 < 인생은 아름다워 > 에도 곳곳에 담겨 있다. 동성애뿐 아니라 낙향, 가사를 분담하는 남편, 개발시대에 밖으로만 돌다 늙어 집으로 돌아와 구박받는 할아버지, 늦게까지 결혼 안한 삼촌, 재혼가정, 일하는 여성의 출산과 낙태 문제 등 사회 현실이 망라돼 있다.
< 임영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