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 '김제동 구하기' 한목소리
여야 정치권, '김제동 구하기' 한목소리
TV리포트 | 윤상길 편집국장 | 입력 2010.06.08
'설마'했던 일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방송인 김제동의 방송연예계 퇴출이 정치권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이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김제동씨를 프로그램에서 자른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 7일 국회에서 개최된 한나라당 의원 워크숍에서 터져 나온 불만의 목소리다.
이날 '민본21'(한나라당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 소속 김성식 의원(서울 관악갑)은 "5ㆍ18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한 사람과 방송인 김제동씨를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한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의 이 발언은 집권 세력 쪽에 김제동을 방송에서 하차하게 한 사람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책임자를 문책해야 된다는 주문이다.
이번 워크숍은 6ㆍ2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 분석과 함께 민심 수습을 위한 당ㆍ정ㆍ청 쇄신 방안이 집중 논의된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나온 내용이라면, 김 의원이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라면 "소소하게 따지자면 김제동을 자른 사람도 민심을 이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김제동이 지난해 KBS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도, 최근 케이블 채널 Mnet의 '김제동쇼' 방송이 계속 미뤄졌을 때도, "외압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제동의 사회 활동이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이란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여당에서만 인정한 내용은 아니다. 같은 날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김제동 문제가 거론되었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전남 목포)도 인사말을 통해 "MBC사태에 대해 민주당 문광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을 장악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개그맨 김제동씨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모두 노력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야의원이 이처럼 한목소리로 김제동 방송 퇴출이 권력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정치의 속내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김제동이 왜 방송에서 왕따가 되었는가"의 해답을 찾은 셈이다.
김제동은 방송인이기에 앞서 우리나라 국민이다.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자신의 의사표명을 통해 여론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방송연예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문화관광체육부의 유인촌 장관은 탤런트 출신이다. 전 정부에서는 이창동 영화감독과 연기자 김명곤 두 사람이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행정안전부 맹형규 장관은 앵커 출신이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 자유선진당 원내대표인 류근찬 의원도 앵커 출신이다.
자유선진당 대표 직무대행인 변웅전 의원과 강원도지사로 출마했던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 한나라당 문광위원인 한선교 의원,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은 아나운서 출신이다. 탤런트 송일국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진 미래희망연대의 김을동 의원 역시 탤런트 출신이다.
지난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방송연예인은 많다. 영화배우 신성일, 신영균, 탤런트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정한용, 가수 최희준, 고인이 된 코미디언 이주일 등이 여의도에서 의정 활동을 펼쳤다. 이밖에도 정치에 한발을 담고 있는 방송연예인의 숫자는 의외로 많다.
정치 세계에서 방송연예인의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쯤에서 김제동 퇴출을 둘러싼 논란은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중의 일반적 정서이다. '언론 표현의 자유 위협'이니 '방송인 솎아내기', '방송 획일화', '우파가 장악한 방송' '반민주적 작태' 같은 정치적 수사는 더 이상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단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탤런트 박용식을 안방극장에서 퇴출시켰다. 그는 10년 가까운 시간을 재래시장에서 참기름장사로 지내야 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개그맨 심현섭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송에 아예 출연도 못했었다. 심현섭을 밉보는 노무현 정권과 그런 정권의 눈치를 보는 방송이 합작했던 것이다. 방송인 김제동의 퇴출이 그때처럼 정권과 방송이 손을 맞잡은 결과라면 그야말로 허무개그 같은 일이다. 방송은 이제 김제동에게 다시 마이크를 돌려줘야 한다.
김제동이 방송인이라면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 그에게 방송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인보고 정치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특히 탁월한 예능 감각을 지닌 그에게 방송 관련 '높은 분'들의 입맛에 맞는 표현만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웃기는 자유까지, '김제동 어록'이 회자되는 그의 입담까지 박탈되는 불행한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연예인은 개인의 신념을 지킬 자유조차 포기해야 한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방송에서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퍼뜨리는 게 아니라면 이들에게도 스스로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민주사회다. 특정 방송연예인들을 찍어서 따돌리는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단지 권력층이 불편해한다 라는 이유로 재갈을 물리려 든다면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만다. 뒤늦게나마 정치인들이 여야를 떠나 김제동 퇴출에 한목소리를 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진 = TV리포트 DB
윤상길 편집국장(대우) yoonsk4u@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