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사람들
김미화 고소한 KBS, 개콘보다 더 웃겨요 - 사람이야기 -
강물이 흘러
2010. 7. 19. 20:34
얼마전 김미화씨와 통화했었습니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대한 이곳의 분위기와 회담 내용 등을 정리하는 생방송 인터뷰였습니다.
한국에서 기자로 일하면서도 김미화씨와는 일면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야구방망이를 손에 든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 때문에 우리 또래라면 누구나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몇년 전부터는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는 뉴스를, 캐나다에서도 종종 들으며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이네' 하는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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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친근감과 호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곳 시간으로 아침 7시30분(한국시간으로는 저녁 8시30분)에 이루어진 5분 정도의 인터뷰는 즐거웠습니다. 전날 밤 12시에 전화 왔는데도 신경질 내지 않았습니다(한국에서 야밤에 전화해 오면 말도 듣지 않고 버럭 하며 끊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졸립기도 하거니와 생애 최악의 뉴스를 들을까 겁이 나서...). 김미화라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방송이었는데도 전혀 떨리지 않았고, G20에 대한 관심이 없어 전날 버린 신문을 찾아놓고 벼락치기 준비를 했는데도 말이 막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 '썰'을 푸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데도 내가 쫄지 않고, 프로그램 작가의 칭찬까지 받은 까닭은, 내가 방송 체질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능력 때문이다 싶었습니다. 몇년 전, 무슨 일로 인하여 한국 방송과의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여러 차례 했을 때 인터뷰어들의 능력을 내 나름대로 비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단연 탑은? 말 안해도 알 겁니다. 그는 내가 말을 술술 잘 하도록, 내 말에서 단서를 찾아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사석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듯 말이지요.
김미화씨도 그랬습니다. 프로그램 작가는 나더러 잘 했다 칭찬했지만, 나는 김미화씨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참 잘 하는군요"라고.
엊그제 한국 뉴스를 보니, 김미화씨가 트위터에 KBS 블랙리스트를 언급했다고 하더군요. 캐나다에서 보아도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존재하는 것을 두고 "없다"고 하기는 좀 쪽팔리는 일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KBS가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는 걸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김미화씨가 개그맨 출신이라서, 웃기는 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로 여겼는지, 아니면 무슨 열등감을 가지고 "우린 김미화보다 더 웃길 수 있거든?" 하고 과시하고 싶어 그랬는지, 여하튼 KBS가 고소를 했다는 뉴스는 캐나다 동부의 7월초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무려 34도였습니다.
한 방송인이 어떤 의문을 가지고 자기 트위터를 통해 묻는 물음에 대해, KBS는 참 용렬하기 짝이 없게 대응했습니다.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을 고소까지 했다니 용렬하달 수밖에요.
"아니다"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음직한 인물들, 이를테면 윤도현이나 김제동, 아니 의문을 제기한 김미화씨를 딱 한번만 출연시키면 일은 간단하게 풀립니다. 개콘,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두고 고소까지 했다니, 그 흥분하는 모습 자체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제대로 증명하는 듯 보입니다.
문득 과거 5공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은 따로 있는데, 신문방송은 헛소리를 했습니다. 민정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일부 띨빵한 이들 외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문방송에서 그 말을 하는 당사자도 믿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때는, 시대가 그랬으니 그랬다 치고, 지금은 시절이 어느 때인데... 캐나다에서 한국 뉴스 보고 블로그에 바로 글을 올리는 시대인데...
앞뒤가 안맞는 이런 걸 두고 우리는 난센스라고 합니다. 시대 혹은 시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을,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만들어내고 있으니, 난센스일 수밖에 없고, 상상도 불허하는 기상천외한 난센스이니 코미디 같고, 하여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난센스를 두고 우리는 블랙코미디라고 부릅니다.
지난 정권과 친했던 사람들을 자리에서 내치는 것까지는 봐줄 수 있다 해도(나는 캐나다에서든 한국에서든 정권교체라는 것을 자리 따먹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황지우에서 진중권에 이르기까지 약점도 아닌 것을 꼬투리잡아 치사하고 용렬하게 내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삽질도 참 가지가지로 합니다.
덧붙이기 : 이민을 오기 전인 1990년대말, KBS의 코미디를 부활시킨 주인공이 김미화씨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때 다 죽어가던 KBS 코미디를 '개그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일으켜세웠지요. 김미화씨가 KBS의 20년지기들에게 서운해 할 법도 하군요. 의리와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