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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동료를 위해 뛰는 진짜 선수다

강물이 흘러 2011. 5. 20. 20:47

 
[김세훈의 창과 방패] 박지성은 동료를 위해 뛰는 진짜 선수다

 

미디어다음 | 입력 2011.04.08

 

  설기현에게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단체종목이라는 측면에서 축구를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겠느냐"고 말이죠.
  그 때 그는 잠시 생각에 젖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축구는 내가 아니라 남, 즉 동료를 위해서 뛰는 종목이다"라고 말이죠.
  순간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잠시, 아주 잠시 이렇게 생각했죠. '운동이라는 게 내가 돋보이려고 하는 거지 무슨 동료를 위해서 뛰느냐'고 말이죠. 그리고는 곧바로 반성했습니다. 그래 축구란 동료를 위해 뛰는 게 맞다고 말이죠.

   설기현은 과거 자신의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과거 레딩에서 있었을 때예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홈에서 싸웠는데요. 우리가 1-0으로 앞서고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은 후반전이 끝나기 직전이었고요. 우리는 맨유를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죠. 그런데 그 때 호날두에게 골을 먹었어요. 결국 1-1로 비겼죠."

   그리고 설기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가 끝난 뒤 저는 속으로 너무 많이 후회를 했어요. 제가 골을 넣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지막 호날두의 슈팅에 앞서 제가 수비에 가담을 소홀히 하면서 맨유의 볼이 살아가 골까지 연결이 됐거든요. 제가 끝까지 수비수를 돕기 위해 몇 발 더 뛰었더라면 공이 호날두에게 연결되지 않았겠고 그랬다면 우리가 1-0으로 이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도 저에게 왜 수비에 가담하지 않았냐고 따지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 잘못이었다는 걸 말이죠."

   그 때부터 설기현은 축구는 내가 아니라 남, 특히 동료를 위해 뛰는 경기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설기현은 그리고 2002년 히딩크 사단을 회고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선수들 개인기량이 상대보다 좋았다고 결코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전력차를 극복한 게 바로 팀워크였죠.  상대가 볼을 잡으면 우리는 예외없이 두명, 세명이 함께 에워싸 볼을 빼앗았죠. 1대1로 막는 게 쉽지 않으니까 2대1, 3대1로 막은 거죠. 그렇게 동료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뛰었기 때문에 우리가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공격수라면 굳이 수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수비수가 2,3골 먹어도 나만 골을 넣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공격만 하려는 선수도 적잖습니다. 반대로 골만 먹지 않으면 되지 공격수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비수도 있습니다. 이런 수비수들은 공을 앞으로, 외곽으로 냅다 질러대면 될 뿐 굳이 미드필더에게, 공격수에게 세밀하게 연결하려고 하지 않죠. 이들은 모두 자기만을 위해서 볼을 차는 선수죠.

   반대로 동료를 위해 뛰는 선수는 어떤가요. 동료 공격수에게 몰린 수비진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빈 공간으로 뛰어가는 선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공이 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죠. 그의 목적은 골을 넣는 게 아니라 동료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비수를 돕기 위해 우리 진영 아래까지 내려오는 공격수들이 있습니다. 공격수가 수비까지 열심히 해주니 수비수들 보기에는 너무 고맙죠. 그래서 이런 팀 수비수들은 공격수가 조금 더 좋은 위치에서 조금 더 좋은 패스를 받게 하도록 자기 진영에서부터 볼을 아낍니다. 
  

   이런 선수들이 바로 동료를 위해 뛰는 선수들이죠.
   이런 것은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종목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축구가 동료를 위해 뛰는 게 더욱 중요한 까닭은 희소성이 무척 높은 단 한골로 큰 승부가 갈리기 때문이죠. 골은 하나의 실수, 찰나의 방심 등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 허용합니다. 잠시 욕심을 부리거나 안일하게 행동하면 그게 곧바로 승패와 연결이 되는 거죠.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첼시전에서 자신이 아니라 동료를 위해 뛰었습니다. 수비에서 보여준 집요함과 욕심을 부리지 않은 무심플레이, 그게 박지성의 트레이드 마크죠.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은 전술소화능력이 탁월했다"고 칭찬했죠.
  앞서 박지성의 선발을 점치지 않은 언론들도 박지성에게 평점 7을 주며 그의 활약상을 높이 샀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소속으로 그동안 가장 많이 들은 평가는 무엇이었나요? 네 그건 "열심히 뛰었다" "지지치 않은 체력으로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입니다.
  물론 가끔 결정적인 골을 넣을 때도 있었지만 언론의 평가는 대부분 그의 강한 체력과 포기를 모르는 정신력,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성실함에 초점을 두어왔죠. 그리고 그게 박지성의 진짜 본 모습이기도 하고요.

  2년전 박지성의 동료들은 박지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A real player for players"라고요. 선수들 중 진짜 선수라는 게 아니라 선수들을 위한 진짜 선수라는 의미입니다. 이보다 박지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겁니다. 자신이 빛을 보기보다는 동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그늘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수행하는 것, 그게 박지성의 참된 진가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아인트호벤에서 처음 영입할 때를 상기하면서 3가지 단어로 박지성을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퍼거슨 감독이 꺼내는 단어는 활동량, 자세, 총명함이었습니다. 정확한 슈팅력, 현란한 패스 등 기술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스타만 즐비한 맨유에서 공수 연결고리, 빈 공간 침투, 세컨드 볼 잡기, 커버 플레이 등 희생적인 플레이를 할 줄 아는 박지성이 필요하다는 걸 퍼거슨 감독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영입한 거죠.

   박지성은 이번 첼시전 뿐만 아니라 맨유 소속으로 대부분 동료를 위해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폴 스콜스 등 이른바 테크니션들이 박지성을 우습게 봤죠. 하지만 스콜스, 호날두 같은 스타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뛰지 못하는 곳에 가서 대기하고 있고, 자신들이 미처 하지 못하는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박지성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죠.

   축구는 정말 동료를 위해서 뛰는 경기입니다. 그게 축구 정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걸 박지성이 맨유에서 수년 동안 몸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뛰는 것은 처음에는 빛을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크게 빛을 보게 됩니다. 그게 기술이 크게 뛰어나지 않은 박지성이 오랫 동안 맨유에서 생존하고 있는 가장 큰 비결입니다.

  박지성이 언제까지 맨유에 머물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맨유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박지성은 지금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이타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 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골을 넣지 못해도 박지성이 뛰어난 선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