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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홍명보, 두 남자에게 무슨일이 있었나

강물이 흘러 2012. 7. 30. 14:04

 

박주영-홍명보, 두 남자에게 무슨일이 있었나

[일간스포츠 송지훈]| 입력 2012.07.30 


박주영(27·아스널)은 다루기 힘든 천리마와 같다.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일 수 있는 자질을 갖췄지만, 재능을 항상 드러내진 않는다. 다루기도 쉽지 않다. 어떤 때는 길을 들인 듯하지만, 또 어떤 때는 통제하기 힘들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홍명보(43)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그런 박주영의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비결은 간단했다. 끝까지 믿어줬다. 잘 하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변치 않는 신뢰를 보여줬다. 박주영은 때로 부진을 겪다가도 시원스런 골과 함께 다시 돌아와 홍 감독을 기쁘게 만들곤 했다.


 

◇ 박주영이 돌아왔다
박주영은 30일 새벽(이하 한국시간)에 영국 코벤트리 소재 시티 오브 코벤트리 스타디움에서 끝난 스위스와의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의 선제골을 터뜨렸다. 후반 12분에 팀 동료 남태희의 크로스를 호쾌한 다이빙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스위스의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 양 팀이 한 골씩을 추가해 한국의 2-1 승리가 확정됐다.

박주영은 그간 적잖은 마음 고생을 겪었다. 26일 새벽에 치른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를 휘저으며 공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대 수비에 꽁꽁 묶여 이렇다 할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올림픽 개최지 런던은 박주영의 소속팀 아스널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소속팀을 포함한 프리미어리그 관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압박감이 되어 돌아왔다.

◇ 홍명보의 비법, 믿음

멕시코전을 마친 뒤 박주영의 부진한 경기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홍명보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위스전을 준비하며 실시한 전술훈련에 변함 없이 박주영을 최전방 공격의 꼭짓점으로 내세웠다. 박주영에게 특별히 뭔가를 주문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박주영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박)주영이의 경기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컨디션도 상당히 올라와 있다. 심리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찾아보겠다"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스승의 한결 같은 신뢰를 확인한 제자는 골로 보답했다.

◇ 이심전심의 힘

홍명보 감독과 박주영을 이어주는 신뢰의 끈이 처음 만들어진 시점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며 박주영에 대한 후배 선수들의 신뢰를 확인한 홍 감독이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박주영을 선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박주영은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선수단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이기면 함께 웃었고, 질 땐 함께 울었다. 축구 선·후배 관계를 떠나 끈끈한 인간 관계가 만들어졌다. 박주영이 아스널 이적과 관련해 고민할 때, 병역 관련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마음을 터놓고 조언을 해주며 멘토 역할을 한 이가 바로 홍명보 감독이었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 자신은 "나는 주영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말 한 두 마디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박주영의 마음을 움직여 천리를 뛰게 만드는 힘은 '이심전심'에 있었다.

코벤트리(영국)=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