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유산과 ‘귀농인 노무현’ 그리고 민주주의
2009/06/01 18:09 in 백수아빠, 세상 보는 창
바보 노무현 그가 갔다. 신념의 사나이 그가 갔다.
그는 한줌의 재로 변해서라야 비로소 그가 그토록 바랐던 고향땅에서의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9일 고인의 영결식 때는 ‘짐승’들을 제외하고 ‘인간’이라면 모두 울었다. 그리고 국민장이 끝이 난 지금까지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가희 ‘노무현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전국에 걸쳐 고인을 추모하는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그 추모물들에서는 ‘바보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를 기리기에 바쁘다. 서민 대통령 노무현, 일찍이 우리는 이런 특이한(?)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바로 옆집 아저씨 같고, 이웃 할아버지 같은 소탈하고 솔직한 대통령을 말이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만만한(?) 대통령이 그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오만한 이 정권의 정치적 보복과 보수언론의 끈질긴 비아냥과 조롱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고 분노가 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은 우리사회에 많은 것을 남기고 있다.
그의 유산이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남은 것이다. 이제 그 유산을 정리하고 그 유산을 이 사회에서 실현하는 일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남은 것이다.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언론개혁, 정치개혁, 더불어 사는 삶으로의 개혁 등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이들 유산은 대단히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고, 어쩌면 이것들을 개혁할 수만 있다면 우리사회가 정말이지 ‘사람 사는 세상’으로 한걸음 더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많은 유산들 중에서 필자는 그다지 언급되고 있지 않은 유산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려 한다. 바로 ‘귀농인 노무현’에 대해서 말이다. 고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사람들과 함께 농사짓고, 고향마을을 살려 보려 한 바로 그 지점 즉, ‘농부 노무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 봉화마을에서 트렉터를 몰고 직접 추수를 하고 있는 고인의 생전의 모습
한미FTA 협정을 체결한 노무현과 낙향 후 농사짓는 노무현
그런데 몇가지 의문이 든다. 고인이 저 ‘석양 너머로’ 사라지기 전에도 든 생각이지만, 한미FTA를 체결한 노무현과 고향인 봉화마을로 돌아와 농사짓고 있는 노무현이 도대체 일치가 되지 않았다. 한미FTA 협상 국면에서 그토록 제기된 많은 문제들 중에서 찬반 양쪽에서 공히 인정하는 것은 우리 농업의 몰락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퇴임 후에 낙향해서 농사를 지으며, 농부들과 어울려 살겠다는 것이고, 실지로 고향사람들과 농사를 지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아니 들 수가 없는 것이다.
농업의 미래, 친환경농업만이 대안이다?
그 의문에서 약간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TV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귀향 후 노무현의 생활을 다룬 방송을 통해서 본 오리농법으로 농사짓고 있는 농부 노무현의 모습이었다. 그런 것인가?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친환경농법이 대안인가?
실지로 쌀마저 수입을 해서 먹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농업은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렇잖아도 식량자급률이 25%(쌀 제외시 5% 미만)도 안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대로 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 농업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농업이란 것은 국민의 목숨과 직결된 생명산업이자 국가 근본산업인지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친환경농업으로 전환, 농산물의 경쟁력 확보를 통해 농업을 살려보자는 것이고, 봉화마을에서도 그 방편으로 오리농업을 도입해서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 고인의 고향인 봉화마을 전경
농업의 현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해서 특화된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해도 문제의 해결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TV를 통해 몇차례나 들려준 고인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키를 ‘귀농인 노무현’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보시라. 그가 봉화마을에서 거두는 성공(?)은 그대로 전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학습이 될 것이다. ‘인간 노무현’이 ‘귀농인 노무현’으로 사는 모습은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모습을 보고, 대게 귀농지향의 사람들인 도시 직장인들을 귀농의 대열로 몰고 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 저런 식으로 살면 되는구나. 내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지으면서 정말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귀농, 귀촌을 해서 꼭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다. 그 마을에 필요한 무엇이든지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만 많이 모인다면 무수한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지역이 살아나는 것이다.
농부로서 팍팍한 삶 - 삶의 성찰 도구
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농촌에서의 삶은 팍팍하다. 그러나 아무리 팍팍해도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나 철학적 기반이 제대로 서있다면 그 힘든 삶은 또 다른 성찰을 낳는다. 그것은 이 땅에서 인간만이 군림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면서 사는,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것이다.
‘귀농인 노무현’이 바라는 바가 어쩌면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마을이 살아나고, 그런 마을들이 곳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말이다.
건강한 자립 농부 - 민주주의의 단초
이 땅의 진정한 농부이자 농학자인 천규석 선생은 일찍이 그의 책 《쌀과 민주주의》에서 “문화적 자주와 정치적 자치를 지키는 (쌀)농사”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쌀의 생태적 · 문화적 조건들이 이 땅에 소농경제와 그 두레의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자치와 문화적 주권을 지킬 수 있게 했던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쌀은 우리 지역자치의 마지막 보루요, 지역주민들의 자존심이다. 쌀을 지키는 것은 그래서 생명주권을 지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치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다”고 역설한다. 즉, 산업자본의 노예로 예속된 도시인들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산업자본의 예속에서 벗어나 가난하지만 자립적인 인간들이 대세를 이룬 사회에서만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굉장히 레디컬한 이야기이지만 진실에 근접한 주장이라 생각한다. 民主主義의 그 民이 자립적 · 주체적 인간일 때 진실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립적 소농들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에 가까워진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의 유산을 받아 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아까운 현실이다. 봉화마을에서의 성공한 ‘농부 노무현’을 보고 이 땅에 어쩌면 거대한 귀농의 물결이 소용돌이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마을이 다시 살고, 고향이 번성하고 그곳이 산업자본의 노예이길 거부한 자립, 자치의 그 農民들로 넘쳐날 때 진실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면 지역이 고르게 발전할 것이고 그로 인해 고인이 그토록 타파하길 원했던 지역감정도 자연스럽게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까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인의 비참한 최후를 맞아 어쩌면 그를 지켜주지 못한 죄인인 우리는 그의 유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은 많고 크다.
필자는 그 크고 많은 유산들 가운데 어쩌면 농업살리기, 농촌살리기의 큰 꿈을 안고 가신 ‘농부 노무현’의 뜻이 가장 귀중한 유산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그것은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힘들고도 어려운 결정일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소수의 선각자들만의 몫일 때 힘이 드는 것이지 그것이 대세가 된다면 즐겁게 맞을 수도 있는 참으로 마음이 풍요로운 ‘고난’일 것이다.
‘농부 노무현’ 그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갔다. 이제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길에 '귀농'이라는 아름다운 선택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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