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카페 ‘김예슬 선언’에선 무슨 일이…
경향신문 | 김민아 기자 | 입력 2010.03.23
ㆍ고려대생 김예슬씨 '대학 거부' 선언 이후
ㆍ작은 '돌멩이'에"심장이 찔린 20대 "거짓희망, 한판 붙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 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 사진 '레프트21' 제공 >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가 대자보를 통해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자발적 퇴교 선언, 아니 '인간 선언'이었다. 경향신문(3월11일자 1면)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졌고, 인터넷 공간이 들끓었다. 보수신문들은 짐짓 외면했지만 그렇다고 김씨의 '작은 혁명'을 가릴 수는 없었다.
20대들이 대학과 자본의 탑에 균열을 내는 '돌멩이'가 되겠다며 앞다퉈 나서기 시작했다. 인터넷포털 다음에 생긴 카페 '김예슬 선언'(cafe.daum.net/kimyeseuls)은 이들이 구축한 대표적 진지(陣地)다. 지난 15일 개설된 이 카페는 갓 1주일을 넘겼지만 벌써 회원 수가 600명을 넘어섰다. 카페지기 '꿈꾸는린'은 "이제 우리가 김예슬이 될 차례다. 우리 이대로 돌아서지 말자. 작은 돌멩이인 우리들이 함께 바위가 되자"고 밝히고 있다.
20대들은 카페에서 대학을 고발하고, 자본을 고발하고, 사회를 고발한다.
닉네임 '모두의리그'는 1학년 1학기 경제학개론 교수의 첫 오리엔테이션 때를 기억해낸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Capitalist(자본가계급)와 Labor Class(노동계급)다. 차이점이 뭔지 아나? 이런 거다. 내가 은행에 간다. 사람들이 1층에서 줄서가며 번호표 뽑고 찌질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2층 VIP실로 올라가 여유롭게 커피 마시면서 일 본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Capitalist가 되어라."
'열정의사람'도 비슷한 사례를 든다. "한 교수님이 이렇게 강의하시더군요. 여러분은 상품입니다. 스스로의 상품가치를 높여야 하죠. 각 기업마다 원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신을 기업이 원하는 상품으로 만들어가십시오."
'로빈'은 자신이 과외를 '때려친' 이유를 털어놨다. 고3 학생을 과외할 때였는데, 학생의 공부시간과 잠자는 시간,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자유시간)을 함께 계산해봤다. 1주일 가운데 8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애들 죽이는 짓을 하고 있다는 충격에 모든 과외를 다 접었다고 했다. 물론 그만뒀다고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과외 말고 다른 방법으로 밥벌이 하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으니까.
20대는 김예슬씨가 언급했던 '대학과 기업, 국가의 큰 탓'을 묻는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자신들의 작은 탓'도 묻는다.
"대자보 읽는 내내 마음이 숙연했습니다. 저도 대학교 3학년생이지만 이만큼 깊은 성찰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저 세상과 타협하려고만 했기에…. 더욱 부끄럽고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아주 오래 전에는 어른이 되면 옳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적 꿈은 물거품이 되어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르마조)
"제 꿈은 잃어버린 채 학점에 매달리고 스펙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네요. 저는 예슬씨만큼 용기있지는 못해서 자퇴까지는 못할 거 같아요. 그러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도전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purplerain)
"가슴 깊이 김예슬을 지지하고 그와 이념을 같이하면서도, 나의 현상으로 돌아오면 이리저리 판단을 잰다."(mann)
지난 10일 김예슬씨가 자발적 퇴교를 선언하며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붙인 대자보를 한 학생이 읽고 있다. 김정근 기자
카페는 20대의 고통을 몰랐거나,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기성세대들의 자성의 장이 되기도 한다.
지천명의 나이라는 최흥집씨는 "나에게 날카로운 돌덩이 하나가 날아왔다. 내 자식들보다도 작은 아이가 사회를 향해 일성포효를 하고 있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용서를 빈다"는 글을 올렸다.
내년에 대학 갈 딸을 뒀다는 '열공줌마'는 "sky에 어떻게든 밀어넣어보고 싶어 아이를 다그치는데 정작 무엇을 위한 건지요. 내몰리는 내 아이가 안쓰럽고 대학에서 버거운 젊음이 가슴 아프네요"라고 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에 대해 "줄 세우기에 대한 20대의 분노가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의미"라며 "비등점에 이르러 물이 끓어오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최근 무상급식 문제가 지방선거 핵심 이슈로 부상한 것과도 연결지어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 '다른 질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예슬씨를 응원하기 위해 16일 열린 문화제에서 록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김예슬 선언 이전의 20대는, 김예슬씨가 대자보에 쓴 대로 '빛나는 G세대'이거나 '빚내는 88만원세대'였다. 물론 전자에 속하는 건 선택받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후자에 속한다는 걸 20대도, 기성세대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현실이 남루하기에 모두들 모른 척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 선언으로 현실은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김예슬씨의 말처럼 "작지만 균열은 시작된" 것이다.
물론 당장은 김예슬씨가 탑에 낸 균열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대자보는 벌써 사라졌고, 세상은 예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원래 균열이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균열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엔, 이미 탑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땐 손을 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김예슬씨의 대자보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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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삶을 건 행동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기를”
경향신문 | 김민아 기자 | 입력 2010.03.23
다음 카페 '김예슬 선언'을 개설한 '꿈꾸는린'은 이화여대생 심해린씨(경영 3·휴학)다. 심씨는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사회적 실천과 고전 읽기를 하는 '대학생 나눔문화'에서 김예슬씨와 고민을 함께한 사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걸고 피워올린 불씨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카페를 만들었다.
지난주 ' < 김예슬 선언 >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라는 대자보를 이대와 고려대에 붙이기도 했다. "설령 김예슬씨처럼 대학 기득권을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지지건 비판이건 본인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지난 19일 만난 그 역시 자발적 퇴교를 고민하고 있었다.
카페 개설자 심해린씨
"듣는 순간 심장이 찔렸다. 고통스러웠다. 며칠 동안 잠도 오지 않았다. 뜨거움을 느낀 이유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대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문제와 교육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많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희망도 느꼈다. 그 선언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선언의 의미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텐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속도와 압박, 경쟁에 묻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대로 묻혀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에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말하는 것도 저항이고, 듣고 생각하는 것도 저항이다. 무언가 상상하는 것도 저항이다."
- 주변의 20대는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우리는 한번도 자기 힘으로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상상을 못한 세대다. 길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시장과 국가와 대학 안에서…. 우리에겐 자신이 '잉여인간'이라는 무력감이 있다. 내 손으로 밥을 벌어먹을 수 없고, 언제까지 계속 달려야 되는지 불안하고, '나만의 이야기'가 없다는 억울함도 있다. 그런데 김예슬씨의 선언이 있은 뒤, 가슴이 뜨거워졌다, 용기가 생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게 깊은 울림을 줬다. 기득권을 버린다는 데 대해 '사회적 자살'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건, 일부이긴 했지만, 꿈을 찾아 노력하는 이들을 욕되게 하느냐, 그래서 어쩌란 얘기냐…는 반응이었다."
"20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하는데, 손발 다 묶어놓고 짱돌 들란 말인가. 우리는 '88만원 말고 188만원 달라'는 게 아니다. 등록금 깎아달라는 것만도 아니고, 국가 복지로 맘 편히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학과 기업과 국가 구조 속에서 한 줄로 세워지는 게 싫다는 거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나를 내맡기는 게 아니라, 억압의 핵심을 스스로 알고,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찾고, 내 손으로 내 밥을 정직하게 벌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거다."
- 본인은 어떤 20대인가.
"21년간은 별다른 회의 없이 살았다. 나름대로 착한 딸이라 부모님이 만족하실 만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입학한 뒤엔 학점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내가 (부모님에 의존하는) 인큐베이터 인간인가? 내 삶을 헤쳐나갈 능력이 내 안에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희생하고, 나한테 매달리시고….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동아리 활동 하고, 책도 읽으면서 길을 찾았다."
- 대학 교수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썼다.
"문제의 핵심이 교수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스승이다. 우리가 인생을 걸고 큰 물음을 던진다면, 그분들도 우리를 이끌어줘야 한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최소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2008년 촛불집회 때가 생각난다. 집회 나가느라 수업을 빠졌더니 담당 교수님이 '그런데 왜 가니'라고 했다. 대학생인데 진리를 추구할 자유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학 총장은 '대학의 1차 고객은 학생이고, 궁극적인 고객은 기업'이라고 했는데, 대학이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치자. 그러면 직장 못 구한 졸업생들은 리콜해야 하지 않나.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비겁하다."
- 김예슬 선언 이후의 개인적 변화가 있다면.
"자기 삶을 던져 무엇인가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예슬 언니가 잘 되길 바란다. '고졸 성공신화'가 아니라 더 높은 배움을 얻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같은 고민을 했던 대학생으로서,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을 떠나는 길을 택한다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존경받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 가르침을 구하고, 젊은이답게 신나게 놀아도 보고, 내 손으로 먹을 것도 길러보고 싶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만날 땐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리고 싶다."
< 김민아 기자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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