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세상 읽기

비싸고 질 낮은 인천공항을 원하는가

강물이 흘러 2010. 8. 9. 13:32

비싸고 질 낮은 인천공항을 원하는가

 

[한겨레21] | 2010.07.16

정부 민영화 드라이브에 맞서 연구자 11명 보고서 발표…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 오히려 떨어질 것"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항은 어디일까? 영화 < 터미널 > 의 배경이 된 미국의 존에프케네디 공항일까, 아니면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일까? 공항업계에서는 아마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다. 공항 분야의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처음으로 5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공항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인천국제공항이다. 국제연합 자문기구인 국제공항협의회는 여객 25만 명을 대상으로 시설·서비스 등 34개 분야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뒤 이 상을 시상한다. 인천공항은 이 밖에 항공업계 전문기관이 주는 시상식에도 단골손님이다. 시설과 서비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라 인천공항의 지분 49%를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사가 경영 효율을 높이고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기능하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17조원을 쏟아부은 국가 기간시설을 매각하면 공공성이 약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인천국제공항공사 국정감사에서도 민영화를 보류하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사 주식의 약 15%를 올해 후반기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내년에는 나머지 34%에 대한 매각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민영화 드라이브에 맞서 연구자 11명이 머리를 맞댔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김윤자 한신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연구성과를 모아 7월11일 '동북아 항공산업과 한국 허브공항의 발전 전망'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정부의 인천공항 민영화 논리를 오목조목 짚었다. 보고서와 정부 입장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쟁점 1 '허브공항'으로 기능 강화?

   정부는 인천공항을 허브공항으로 기능하도록 하려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선진 공항 운영 기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공항의 서비스 수준은 높지만 여러 지역 항공을 잇는 중심 공항의 역할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예를 들어 전체 공항 이용 승객 가운데 환승객 비율을 나타내는 환승률은 2008년 기준 인천공항이 15%로, 일본 나리타 공항의 24%,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47%보다 크게 낮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인천공항이 민간자본으로부터 선진국의 공항 경영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의견은 다르다. 공항을 민영화하면 오히려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이 약화한다는 요지다. 보고서는 "인천공항이 허브공항으로 성장하도록 정부는 착륙료 등 공항사용료 감면, 공항 물류단지에 대한 저렴한 임대료 제공 등 정책적인 지원을 했다"며 "그런데 지분 매각으로 인천공항이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런 정책적 지원은 줄어들고 오히려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김성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외 공항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면, 지분을 구태여 해외 자본에 매각할 것이 아니라 지분을 서로 맞교환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쟁점 2 공항공사 경영 효율화?

   정부는 비상장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기업의 투명성과 자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멀리 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외국의 공항까지 거느리는 공항 운영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복안이다. 허종 한국항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인천공항이 방만하게 운영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민간자본이 주주로 참여하면 경영이 효율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의 경영 상태를 살펴봤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쪽 자료를 보면, 공사는 지난 2004년부터 6년 연속 당기순이익을 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668억원이었다. 보고서는 "정부가 촉박한 시한을 정해가면서까지 민영화를 서두를 만한 어떠한 결정적인 비효율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빠른 성장세와 높은 서비스 수준 및 경영 효율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지나치게 높은 아웃소싱 인력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공사 직원은 지난 4월 현재 872명으로, 공사의 아웃소싱 업체에 속한 6천여 명에 견줘 현저히 적은 인원이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인천공항이 지나치게 높은 아웃소싱 비율로 자체 인력 훈련 및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며 "세금으로 지은 기간시설을 무리하게 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 인력구조부터 먼저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쟁점 3 질은 떨어지고 값은 오른다?

    사회 기반시설인 공항의 지분 매각은 각국 정부에 매력적인 카드다. 지분 매각을 통해 마련되는 재원은 정부의 팍팍한 재정에 도움이 된다. 기획재정부는 일찌감치 올해 예산안에 인천공항 지분 매각대금으로 들어올 5909억원을 잡아놓고 있다. 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경영지표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시장의 압력으로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영화한 외국 공항의 사례를 보면, 정작 공항이용료를 높이거나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이 대표적인 예다. 2002년 매각된 시드니 공항은 2001년 영업이익률이 60.3%였지만 민영화 이후에는 80%를 넘나들고 있다. 지표는 좋아졌지만 이면을 보면 내용은 다르다. 시드니 공항은 민영화를 앞두고 여객이용료, 착륙료 등 여객과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요금을 평균 97% 높였다. 이듬해 여객 수가 소폭 줄었지만 항공 수입은 64.5%나 늘어난 까닭이다. 또 무료로 운행하던 셔틀버스가 유료로 바뀌었다. 승객들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국제공항협의회의 만족도는 2006년 43위에서 지난해 99위까지 떨어졌다. 영국 히스로 공항도 비슷한 예다. 1987년 매각된 히스로 공항도 영업이익률이 상승했지만, 여객 수 증가율은 1998~2008년에 1%로, 1997~2007년 유럽 지역 공항 평균 증가율 4.8%에 크게 못 미쳤다. 영국 하원 교통분과위원회는 지난해 "히스로 공항의 빈약한 서비스 수준이 영국의 경제 번영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복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민영화 찬성론자들은 '민영화 → 효율성 증대 → 요금 저렴화 → 공항 이용 증가 → 수익성 증대' 모델을 제시하지만, 민영화한 해외 공항의 사례를 보면 요금이 느는 대신 이용객은 줄거나 정체하는 등 반대 경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 문제만큼은 정부도 수세적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지분 매각에 앞서 공항이용료 인상, 서비스 수준 인하 등 국민의 우려 사항에 대한 대책을 면밀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쟁점 4 올해 민영화 절차 밟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상장되려면 국회에 제출된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정부는 법 개정을 서두르기 위해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지난해 3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6월 정기국회에서도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반대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올해 상장은 어렵게 된다. 주식 상장 절차가 최소 4개월은 걸린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공사의 지분 매각을 공기업 민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국가 기반시설을 매각하는 문제라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을 최대한 설득해 개정안을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