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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왕따를 다루는 아주 특별한 방식 - 황진미 -

강물이 흘러 2014. 3. 23. 20:21

‘우아한 거짓말’ 왕따를 다루는 아주 특별한 방식
기사입력 :[ 2014-03-21
                             

 ◆ 복수가 아닌 반성과 용서, 그리고 화해 
   그동안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을 다룬 영화들은 꽤 많았다. <여고괴담-두번째 이야기><6월의 일기><돼지의 왕><명왕성> 등은 모두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그리면서, 그로 인한 처절한 응징과 인물들 간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다루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모티브로 삼지만, 그와 같은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우선 <우아한 거짓말>이 다루는 폭력은 흔히 뉴스에 등장하는 집단폭행과는 결이 다르다. 육체적인 폭력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서적인 폭력인데, 영화는 무자비한 육체적 폭력만 아니면 심각한 폭력으로 느끼지 않는 안이한 문제의식에 경종을 울린다. 
   즉 학교폭력의 논의에서 자칫 간과되기 쉬운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괴롭힘의 심각성을 보여주면서, 학교폭력의 문제를 훨씬 폭넓게 이해하려는 입장을 보여준다. 또한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하여, 선악으로 나누어 보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무관심과 방관의 영역을 폭넓게 사고한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이후, 천지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이 원망과 증오의 칼날을 서로에게 겨누기보다, 자신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다른 이에 대한 보살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해자인 화연에게 따지던 미라는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관해 왔음을 만지에게 털어놓는다. 미라를 추궁하던 만지는 미라를 챙기는 언니 미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미란처럼 좋은 언니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슴 아파한다. 그는 자신이 미처 돌보지 못해 허망하게 보낸 천지 대신 가해자인 화연을 돌보겠다고 결심한다. 
  즉 피해자의 유족인 만지가 가해자인 화연이나 방관자인 미라에게 복수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먼저 깨닫고 그들을 용서하며 심지어 가해자를 돌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굉장한 사고의 역전이다. 천지의 엄마 역시 사과하려는 화연의 엄마에게 사과나 용서가 불가능함을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은 동료의 조카에게 먼저 말을 걸고, 미라 자매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 먹인다. 원한으로 인해 자아가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청소년 왕따와 자살을 다룬 여느 텍스트들과 차별되는 <우아한 거짓말>만의 특별한 가치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오히려 사과의 불가능성을 말하고, 용서를 당위인양 설파하지 않으면서도,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 그리고 이웃에 대한 올바른 관심과 연민을 통하여 어느새 용서와 화해의 한 지점에 도달해 있는 가족의 모습 기적처럼 보여준다.


◆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천지가 무심히 뱉던 암시의 말들을 알아채지 못했던 만지가 꿈속에서 천지의 환영을 보는 장면이다. 천지가 자살하기 직전 그것을 눈치 챈 만지와 엄마와 달려가 자살하려던 천지를 껴안는 장면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못한 장면이기에 뼈아픈 통한을 안긴다.

천지가 겪었던 따돌림이 과연 자살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는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폭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원칙이다. 천지는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이고, 따돌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하듯이, 그맘때 친구는 그것 자체가 세상으로 느껴질 만큼 큰 문제이다. 물론 천지도 그 시기를 잘 넘겼다면 아무 문제없이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천지가 마지막에 남긴 털실의 메시지 “지나고 나니, 별것 아니지?”라는 말은 훗날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신에게 남긴 말이다. 천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살이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 털실을 풀어보는 순간이 오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천지는 죽기 전 여러 가지 암시의 말을 남겼지만, 엄마와 언니는 그것을 의미 있게 듣지 못했다. 천지가 죽은 후에야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돌이킬 수 없음에 슬퍼한다. 천지가 자살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누군가 그의 심정을 눈치 채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도와 줄 수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 천지처럼 마지막 구조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우아한 거짓말>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