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목사님 -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
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등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긴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쁜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선생님,
늘 아이들을 위해 사랑과 수고로 애써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영유아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 물을 주고 들여다보아도 자라는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엄청 자라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콩나물은 물만 먹고 자랄까요?
그 물 속에 담겨있는 사랑과
물주는 손길 속에 담겨있는 수고와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담겨있는 마음을 먹고 자랍니다.
그들이 비록 지금은 선생님의 사랑과 수고를 모른다 할지라도
먼 훗날,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웃을 수 있을 겁니다.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별,
그렇게 캄캄한 하늘이 되어도 좋단다.“
2008. 2. 23 시무전례 때...
아이들 앞에서 처음 서던 이십이년 전 그 마음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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