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얼마 전 경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실제로 겪은 일이다.
불국사를 둘러보고 난 후 불국사 앞 잔디밭 소나무 그늘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준비해 온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십여미터 쯤 떨어진 곳에 우리처럼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4명이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당시 주위에는 가족동반, 연인, 친구등 많은 사람들이 넓은 소나무 그늘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여름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 초등학교 중/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딸과 6~7살 정도로 보이는 아들,
그들 역시 그늘에 둘러앉은 우리들처럼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평범한 가족이었다.
가족이 신발을 벗고 돗자리로 올라가 앉았다.
그러자 제일 마지막에 신발은 벗은 딸이 아빠와, 엄마, 남동생의 신발을 앞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후 다소곳이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음식을 아빠와 엄마가 함께 준비하는 동안 딸은 가족 각자의 자리 앞에 수저가 바닥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나씩 휴지를 깔고 정갈히 챙겨 내려 놓았고 물을 따라서 아빠와 엄마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물컵을 건넸다.
음식 준비가 끝나자 이 가족은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즐겼다.
집에서 싸온 음식을 함께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아빠, 엄마, 동생의
신발과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챙기는 어린 딸의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예뻐 보였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같은 나이또래의 다른 애들은 분명 쉽게 할 수 없는 행동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린애가 참 바르고 곱게 배우며 자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내가 저 나이쯤일 땐 어땠었지?
부모님께 떼쓰고 어리광 부리기 바빴던 나였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지금부터다.
우리 가족은 식사를 끝내고 후식으로 간단한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옆의 이 가족도 얼마 후 식사가 끝났고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딸은 동생과
자리 주변에서 고무로 된 탱탱볼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딸은 스스로가 공놀이를 즐긴다기 보다 재미있어 하는 동생을 위해 함께 놀아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동생은 남자애라 그런지 개구쟁이였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공을 주고 받는 누나와 달리 동생은 공을 발로 뻥뻥차며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국 조그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동생이 찬 공이 우리 가족이 앉은 자리에 과일쟁반 위로 날아와 과일 일부가 돗자리
바닥에 떨어져 흩어지고 주위에 있던 음료수가 쏟아졌다.
마냥 개구지던 남자애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부동자세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남자애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하고 웃으며 공을 건네주려는 순간,
누나인 여자애가 재빠르게 달려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아직 철이 없어서요.”
그리곤 사과한답시고 배꼽 인사를 넙죽 하는 것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공 가지고 가서 재미있게 놀아.”
나도 여자애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눈을 맞춰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자녀들의 아빠가 다가와 우리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저희 애가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이 담긴 참 묵직하고 힘 있는 행동과 목소리였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뭐 애들이 뛰어 놀다 보면 다 그런 거죠.”
“저희 애들은 더한 걸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매형이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애들 아빠가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깐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거 좀 드시지요.” 하며 캔음료 10개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하고 웃으며 우리가
손사래를 치자, 아빠는 다시 간곡한 얼굴로
“저희 애 때문에 드시던 다과와 음료가 못 쓰게 되신 것 같아 제가 죄송해서 그럽니다. 사양하지 마시고 받아 주세요.”
“아, 예… 그럼 주시는 성의를 봐서 5개만 받을게요, 저희도 배가 불러서 다 먹진 못할 것 같으니까요.” 이렇게 매형이 다시 화답하고,
“아니요, 다 받으시고 가시면서 천천히 드세요.” 애들 아빠가 다시 건네고,
“아이고, 괜찮다니까 그러시네요… 반만 받을게요.” 매형이 다시 사양하고,
이렇게 옥신각신 기분 좋은 실랑이가 잠깐 이어지는데…,보기 민망했던 내가 감사히 잘 먹겠다며 음료수를 다 받아 들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아빠에게 한마디 건넸다.
“밝고 활발한 아드님도 예쁘지만 따님이 너무 바르고 착한 것 같아 너무 대견스럽네요.” 라고 말하며 내가 보았던 딸의 행동들을 이야기 하며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아빠는 부끄러워 하며 “아이고,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둘다 아직 철부지들이라 애들 엄마가 교육 시키느라 고생이 많지요. ‘하하하’…암튼 감사합니다.”
애들 아빠의 소탈한 성품과 푸근한 웃음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두 가족간의 인연은 이렇게 끝났고 우리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의 대화는 그 가족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즐거운 웃음과 행복바이러스에 흠뻑 취하는 가슴 뻐근함을 우리 가족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부모의 평소 행동과 모습이 자녀들의 가정교육과 인성 발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 하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이나 근린생활 공간을 가게 되면 위의 경우와 비슷한 사례들을 적지 않게 경험하게 된다.
애들이니까 하고 이해하고 넘기기에는 정도를 넘어선 행동과 장난에 좋은 분위기를 망치거나 눈살을 찌푸려 본 경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아이들의 대중의식을 해치는 도 넘은 행동을 적극적으로
타이르고 가르치고 통제하는 부모가 적다는 것이다.
간혹 심한 경우, 그런 아이들을 조용히 타이르다 오히려 그것이 오해가 되어 그 부모와 감정다툼을 하게 되는 일도 종종 겪게 된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녀, 가족들은 세상 그 누구,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이러한 관계에서 이성이 배제된 무조건적인 편들기 식 사랑이 자녀교육에 있어 과연 올바른 방법인 것인가에 대해선 분명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위 가족의 사례는 자기 중심적 사고에 젖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지금 출산율의 저하로 1가구 1자녀 이상인 가정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름의 출산장려정책을 내 놓고 출산율 증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혼 및 출산의 노령화와, 서구적인 생활습관과 환경의 변화, 물가상승에 따른 가정 경제의 부담감, 그 외 부수적인 요인들로 인해 장려 정책들이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는 사실, 미비한 실정이다.
이런 현실의 상황이 사회 전반에 팽배하다 보니 핵가족 문화 속에서 외롭게 홀로 성장한
자녀들의 가치관이나 행동의식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형성되어
또 다음대로 되물림 되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가족간의 불신과 불화가 가져오는 끔찍한 폐해들로 연일 도배되는 요즘 언론의 충격적인 기사를 접할 때 마다 먹먹하고 답답해지던 마음이 얼마 전 그 가족들의 바르고 아름다운모습으로 인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 또 그런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스승을 만난다는 것,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배움이고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이런 소박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 바로 인생의 참 스승이 아니겠는가?
위의 경우와 같이 작은 것 에서부터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부모에게 배우며 자란
두 아이는 분명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바른 성품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런 부모자식간의 도덕적 재산이야 말로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고 선대와 후대를
이어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의 가치를 일깨워 준 화목/단란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던
그 날의 그 가족들에게 앞으로도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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