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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워싱턴` 서울과 이렇게 달랐다

강물이 흘러 2010. 3. 10. 11:13

`폭설 워싱턴` 서울과 이렇게 달랐다

매일경제 2010.02.08

지난 5일 오전부터 미국 동부에 내린 폭설로 워싱턴DC 인근에는 90년 만에 최고치인 97.3㎝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항공기와 기차는 물론 전철과 시내버스 등 모든 교통이 두절됐다. 수만 가구에 전기가 끊겼고, 모든 학교는 휴교했다. 성당과 교회도 텅 비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눈을 '스노마겟돈(Snow-mageddon)'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기자 눈에 비친 폭설 맞은 워싱턴은 '차분'했다. 눈이 오기 전에 미리 대비했고, 눈이 온 뒤에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돋보였다.

눈이 오기 이틀 전인 지난 3일부터 ABC, NBC, 폭스뉴스 등 지역방송들은 대부분 시간을 폭설 예보에 할애했다. 90년 만에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불청객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폭설 하루 전날에 대형 마트는 3~4일치 식량을 비축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 눈에는 '사재기'로 비쳤지만 이들에게는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요령이었다. 학교들은 폭설 전날 이미 휴교령을 발동하고, 학생들에겐 비상행동요령을 가르쳤다.

기자가 살고 있는 워싱턴DC 인근 매클린 지역이 6일 늦은 밤부터 10여 시간 정전이 됐다. 무방비로 영하 날씨에 정전을 맞은 가족은 밤새 추위에 떨었다. 다음날 아침에 이웃 주민들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양초나 손전등, 비상용 이불 등을 준비해두지 않은 집은 우리뿐이었다.
눈이 온 뒤 주민들은 전 가족이 나와 하루 종일 눈을 치웠다. 4차로 이상 큰 도로는 차가 기어다닐 정도로는 제설작업이 되지만 집앞 좁은 도로는 하세월이다. 지난해 12월 19일 폭설 당시 기자가 사는 집앞에는 닷새 만에 제설차가 나타났다.
제설작업이 늦어져도 항의하고 난리치는 시민도, 언론도 없다. 적설량을 족집게처럼 맞히지 못했다고 기상청에 뭇매를 가하는 네티즌도 없다. 애꿎은 공무원들에게만 비상동원령이 떨어지는 일도 없고, 눈 빨리 못 치웠다고 인사조치되는 일은 더더구나 없다.
제설작업이 늦어져도 시민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집 앞을 치우는 일에만 신경 쓴다. 올겨울에 두어 번 폭설을 경험한 기자는 이제야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제설작업이 빠른 나라일 것이라 판단했다.

제설작업은 바삐 돌아가지만 폭설 다음날이 주말이어서인지 주민들은 느긋하다. 지역방송에서는 '제설작업이 부실했다'느니, '시장과 지사는 무얼 하고 있느냐'느니 하는 비판성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방송들은 "4륜 구동차가 아니면 운전하지 마세요"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와서 눈 구경 좀 하세요"라고 권유할 정도다. 걸어 다니는 것보다 '크로스 컨트리'를 하는 게 더 편해서인지 스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 동네 청년들이 모여 눈싸움에, 미식축구도 즐긴다.

워싱턴DC 중심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듀폰서클에서는 시민 2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눈싸움까지 벌어졌다. 폭설이 내린 후 워싱턴과 서울은 많은 면에서 분명 달랐다.

[워싱턴 = 장광익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