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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이경규·박지선·김병만의 말...감동이네

강물이 흘러 2011. 2. 3. 23:34

'광대' 이경규·박지선·김병만의 말...감동이네

오마이뉴스 2010.12.27 

[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다시 돌아온 시상식의 계절. 지난 25일 < 2010 KBS 연예대상 > 이 지상파 방송 3사 중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이번 시상식의 관심사는 역시 대상 수상자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 남자의 자격 > 으로 돌아온 이경규가 그 동안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대상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정통 코미디를 고수해 온 < 달인 > 의 김병만이냐.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독보적인 MC로 인정받고 있는 유재석, 혹은 강호동이 대상을 받을 것이냐.

그러나 < 2010 KBS 연예대상 > 은 대상 말고도 각각의 상에서 쟁쟁한 경쟁을 선보였는데, 그것은 결국 < 개그콘서트 > 의 힘이었다. 정통 코미디가 죽어버린 SBS와 MBC와 달리 KBS는 < 개그콘서트 > 를 지켜내 1년 동안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었고, 그것이 결국 연말 시상식에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쟁쟁한 경쟁 덕에 누가 상을 받을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이는 각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동적이었고 진솔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우러나온 희극인들의 수상소감이 이 시대를 투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를 곱씹게 만들었던 그들의 수상소감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하얀 눈밭에 내가 디딘 발자국이 후배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길이 됐으면 한다.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겠다." - 이경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시구는 작년 이맘때 윤여정이 상을 받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는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한 분야의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일을 꿋꿋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번 < KBS 연예대상 > 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이경규가 KBS에서 대상을 받을 것이냐 여부 때문이었다. 지난 90년대부터 오랜 시간 MBC 주말 버라이어티의 전설이었던 이경규. 그러나 그의 이름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져갔고, 그렇게 화석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KBS에서 다시 재기했다.

그의 슬럼프는 지금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항상 새것만 고집하다보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을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우리들의 현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이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올곧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오신 어른일지도 모른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시곗바늘이 뒤로 돌아가는 이때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과거 그 끔찍했던 시대를 이겨내었던 어른들의 지혜이며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경규의 수상과 그의 듬직한 소감은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 용기이며 희망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다시 정상에 설 수 있으며, 또 많은 이들이 그 연륜을 충분히 존경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개그맨이 아닌 진정한 광대가 되고 싶다" - 개그우먼 박지선

코미디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박지선의 수상소감은 듣는 사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소감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받았을 상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고려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기에 차별을 받아야 했을 그녀. 그녀의 학벌이 일반 사회에서 큰 자산이라면, 코미디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학벌은 그녀에게 그만큼의 독이었을 것이다. 학벌 때문에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더 드러내었어야 했을 것이며, 그만큼 바보연기에 천착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학벌사회에서 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제는 계급차가 확실해져 그 학벌마저 계급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미묘한 차이라도 학벌에 의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 박지선은 당당히 이야기 한다. 진정한 광대가 되고 싶다고. 시대의 광대는 결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풍자를 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아픔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그 아픔을 결코 슬프지 않은 언어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또 그만큼 용기가 있어야 한다.

현재 어처구니없이 어두운 이 사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한 몸 추스르기 위한 잔머리가 아니라 시대를 읽고 말할 수 있는 광대의 용기다. 찰리 채플린이 웃겼던 것은 그의 생김새와 모양새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시대를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너무 안타까운 점은 방송에서 코미디가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 - 개그맨 김병만


개그맨 김병만. (자료사진)
ⓒ 유성호
그래도 이번 < 2010 KBS 연예대상 > 의 최고 수상소감은 김병만의 사자후가 아닌가 싶다. 시청률에 따라 일희일비하여 프로그램 존폐를 결정하고, 투자 없이 결과만을 바라는 현재 방송 풍토에 대한 김병만의 수상소감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우수상 감이었다.

어쩌면 김병만은 이와 같은 소감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 개그 콘서트 > 에서 < 달인 > 이란 코너를 3년 동안 이어오며 전통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하는 그야말로 또 다른 장인의 반열에 들기 때문이다. 한 주 한 주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끝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김병만의 끈기와 노력.

김병만의 시원한 수상소감에 껄껄거리며 웃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곧 코미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러면서 아내는 연극사에서 배운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살기가 고달프면 희극이 성하고, 살기가 편하면 비극이 성한다"

그렇다. 요즘처럼 코미디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던가. 살기는 팍팍해져 가는데 정부는 민간인 사찰이다, 복지비 감축이다 하면서 서민들의 인권과 살림살이를 조여 오고. 이제는 인터넷의 댓글마저 검열하겠다고 나서는 무지막지한 집권층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솔한 비장함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풍자할 줄 아는 유머감각이다. 보온병을 포탄이라 우기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불같은 분노가 아니라 그 스스로 수치심을 일으켜줄 질펀한 풍자와 비웃음이기 때문이다.

풍자거리가 널린 시대다. 다행히 여당대표는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사퇴도 하지 않으신단다. 좀 더 세심한 코미디의 부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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