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꿈틀거려야 생명력이 길어진다. 같은 모양으로 고정된 리더십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같은 식의 리더십에 조직원이 편해지는 순간, 리더십은 이전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과거 어떤 리더십으로 아무리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그 리더십이 제자리에 머문다면 똑같은 성과를 다시 낼 수 없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그래야 리더도 살 수 있고 조직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스포츠팀 감독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배구계 명장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2007~2008시즌 우승했다. 2년 동안 준우승에 그친 뒤였다. 물론 안젤코라는 걸출한 용병이 있었지만 국내 멤버는 오히려 노쇠한 상태였다. 그런 선수단을 이끌고 우승한 신 감독은 당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결국 배구도 사람이 하는 거더라.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효율적인 지도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에서 최고 과학은 심리다. 체력이나 분석, 기술은 누구나 다 안다. 아는 걸 실천하는 건 결국 선수의 몫이다. 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선수들에게 잔소리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운동은 선수들이 했고 나는 약간 도와줬을 뿐이다."
그전까지 신 감독은 '제갈공명'으로 통했다.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선수들을 장기 말처럼, 체스 말처럼 넣고 빼고를 하면서 승리한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런데 신감독이 그런 과거 리더십을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많은 걸 선수들에게 맡겼다. 당시 신 감독은 노장 선수들의 기량을 어떻게 유지시켰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노장들은 일반인으로 치면 환갑을 훨씬 넘는 할아버지와 같다. 대부분 국가대표팀에서 어릴 때부터 오래 뛰면서 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들을 억지로 훈련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냥 조석으로 어른들 문안 인사 여쭙듯 컨디션과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훈련과 휴식을 본인들이 알아서 하게 했다."
신 감독이 노쇠한 삼성화재를 다시 정상에 올려놓은 비결은 그동안 오래 굳어진 자기 리더십과 자기 지도철학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많은 걸 맡긴 것이다. 그렇게 신 감독도 살았고 선수들도 살았다.
한 때 프로야구 SK를 지도한 김성근 감독도 비슷하다. 김 감독은 SK를 처음으로 맡을 때는 모든 걸 관여했고 모든 걸 지시했다. 김 감독은 선수도 하나 하나, 플레이도 하나 하나를 지적하면서 쪼았다. 그렇게 SK가 몇차례 우승하자 그 다음 김 감독은 리더십에 변화를 줬다. 이제 야구를 보고 할 줄 아는 눈을 가진 선수들에게 많은 걸 맡긴 것이다. 당시 SK 선수들은 "감독님이 주자들에게 그린 라이트를 허용해주시는 등 많은 걸 선수들에게 맡겼다"고 입을 모았다. 그게 SK가 다시 한 번 우승한 힘이었고 김 감독이 떠난 뒤에도 SK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밑거름이었다. 올해 우승을 이끈 류중일 감독도 지난해 형님에서 올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지난해에는 분위기만 맞춰준 역할을 했다면 올해는 잔소리를 많이 하면서 선수들을 파악하고 압박하는 역할을 했다. 류감독은 변했고 삼성은 또 날았다.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도 비슷한 루트를 밟았다. 홍 감독이 처음 2009년 청소년대표팀을 맡았을 때에는 모든 걸 지시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했다. 물론 선수들이 어리기 때문이었지만 홍 감독은 어릴 때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고 행동할 줄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홍 감독과 선수들은 광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성장통'을 앓았다. 그리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 홍 감독과 선수들은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이뤄냈다. 홍 감독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3년 반 동안 비슷한 선수들과 생활하면서 서로 많은 걸 알고 교감했다"면서 "런던올림픽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선수들이 원하는 게 같았기 때문에 굳이 내가 뭘 하라고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잘 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 또한 자기를 버리고 선수들에게 맡긴 게 동메달을 딴 힘이 됐다.
최근에는 프로농구 KT 전창진 감독이 자기를 버리면서 리더십의 방향을 크게 틀었다. 전 감독은 그전까지 호랑이 감독이었다. 선수들을 강하게 대했고 모든 걸 완벽한 훈련을 시켰으며 선수들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끊임없이 압박했다. 그런데 그게 올 시즌에는 먹히지 않았다. 그런 스타일이 더 이상 KT 선수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했다. 전 감독이 이전과 다름없이 모든 걸 한 게 오히려 반감을 초래했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야단을 맞은 전 감독은 지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 선수들이 잘해도 박수, 못해도 박수, 실수해도 웃음, 이지슛을 놓쳐도 미소, 심지어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와도 미소. 그런 모습이 선수들을 승리에 대한 압박감과 거부감에서 끌어냈고 그게 초반 부진을 딛고 상승세로 돌아선 터닝 포인트가 됐다. 지금 KT 선수들은 코트에 나서는 게 즐거워졌다.
최근 국내프로스포츠에 리더십 부족, 또는 부재, 공허로 고생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시즌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축구가 그렇다. 최진한 경남 감독은 FA컵 우승에 실패한 뒤 분위기가 다운된 팀을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8개 팀 중 6위를 하자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먹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경남을 꺾고 FA컵에서 우승한 황선홍 포항 감독도 겉모양은 달라도 속내는 비슷하다. 포항은 FA컵 정상에 오르면서 내년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했다. 그러면서 K리그 3위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과거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황 감독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선수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남은 시즌 동안 최선을 다해 최고 결과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룹 B에서는 성남 신태용 감독이 고생이다. 성남은 시즌 초반만 해도 B그룹으로 떨어질 것을 전해 예상하지도 않았던 팀이다. 그런 성남이 그룹 B로 떨어졌다. 스플릿 시스템 적용을 앞둔 그룹 B 구단 감독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은 "동기부여가 안 돼 걱정"이라고 토로했고 그게 지금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말 인천전에서 성남은 개인플레이에만 의존했고 그게 막히자 서로 짜증을 내면서 분열돼 완패했다. 광주 최만희 감독도 걱정이 태산이다. 광주가 자칫 내년에 2부로 떨어진다면 광주 구단은 큰 위기를 맞고 최 감독 본인도 K리그 최초 강등 감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그건 전남 하석주 감독도, 강원 김학범 감독도 똑같다.
마르셀로 리피 감독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리피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리피 감독 지휘 하에 있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멤버는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멤버와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똑같은 선수들은 똑같은 리더십을 보이는 똑같은 감독으로부터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고 새로운 목표를 찾지도 못했다. 그게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가 망신을 당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스포츠 구단뿐만 아니라 지금 수많은 조직이 리더십 부재, 부족, 공허로 신음하고 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첫 업무는 조직원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비틀거리는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먼저 찾는 것이다. 그런 리더는 그동안 자기를 지탱해준 자기 고집과 철학의 한계점을 발견하고는 조직원 입장에서 돌파구를 찾게 된다. 그건 시즌 막판을 앞두고 목표를 상실한 프로구단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의 감독, 모든 조직의 CEO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철칙이다.
"나는 감독으로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다 했는데 조직은 이상하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 리더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직원을 감시하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런 리더는 그동안 잊고 지낸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고 새로운 돌파구도 찾게 된다. 잘 나가는 조직을 이끄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의욕을 잃은 조직을 살려내는 게 진짜 리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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